티스토리 뷰


Boxing Day: 프램튼 vs. 퀵 / 산타 크루스 vs. 마르티네스 / 크로포드 vs. 런디



칼 프램튼 vs. 스캇 퀵은 다수의 미디어에서 '익사이팅함이 보장된 경기'로 홍보되었다. 하지만 막상 실제 경기는 체스 게임, 수싸움을 즐기는 팬들에게는 나쁘지 않을 수도 있었으나, 다수가 기대하던 '익사이팅한 경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양 선수는 첫 라운드에서 거의 펀치를 내지 않으며 철저히 탐색전만을 펼쳤고, 다수의 미디어에서는 10-10 채점을 해야만 했다.


1라운드 이후에도 이러한 경기 양상은 마찬가지였는데, 퀵은 프램튼의 거리 안으로 좀처럼 파고들지 못하며 계속해서 라운드를 일방적으로 내줘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훅을 조금씩 적중시키기 시작한 퀵은 8라운드가 되자 프램튼을 로프에 몰아넣는 장면을 여러 번 연출하며 경기 막판 대부분의 라운드를 가져갔지만 경기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프램튼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경기가 중반까지 너무 쉽게 풀려서 놀랐다."라는 말을 남겼으며, 경기를 지켜본 아미르 칸과 타이슨 퓨리 등 여러 프로들도 퀵이 좀 더 일찍 공세에 나서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러한 경기 내용은 통계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났는데, 퀵은 11라운드에서만 무려 20회의 펀치를 적중시켰으나 첫 라운드부터 7라운드까지 적중시킨 펀치의 총합은 19회에 불과했다.


판정승을 거둔 쪽은 역시 프램튼이었지만, 세 부심의 채점표 중 115-113 퀵이 발표되자 경기장 이곳저곳에서는 야유가 터져나왔다. 퀵이 경기 후반에 선전했다 해도 경기 중반까지 대부분의 라운드를 일방적으로 가져간 쪽은 분명히 프램튼이었고, 실제로 대다수의 비공식 미디어 채점에서도 프램튼이 7~8라운드보다 적게 가져갔다고 판정한 곳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여론은 이 채점표에 의문을 표했다.


퀵의 승리를 채점한 레비 마르티네스는 2014년 카넬로 vs. 라라 경기에서 카넬로 117-111을 채점하며 논란을 일으켰던 바로 그 부심이었다.





경기 후 퀵은 자신이 적극적으로 싸우지 못한 이유를 밝혔다. 4라운드 도중 프램튼의 어퍼 때문에 턱뼈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퀵이 경기 후 병원에서 찍은 X-레이 사진에서는 부러진 턱뼈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대다수의 팬들이 기대하던 장면은 경기 후반에 접어들어서 비로소 나왔기 때문에 2차전을 요구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프램튼 vs. 퀵은 맨체스터 아레나를 2만 관중으로 채웠고, 칼 프로치 vs. 조지 그로브스가 그랬듯이 이렇게 많은 호응을 받는 경기는 굳이 팬들의 요구가 아니더라도 선수, 프로모터, 방송사 측이 2차전을 추진하는 경우가 많은 법이다.


승자 프램튼은 팬들이 퀵 2차전, 그리고 페더급으로 월장해서 레오 산타크루스나 리 셀비를 상대하는 것 등 모든 선택지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놓는 인터뷰를 남겼다.


칼 프램튼 - "2차전? 물론 가능하다. 나와 퀵은 굉장한 라이벌이고 이번 경기도 어쨌든 마지막에는 좋은 경기가 됐다. 첫 6라운드는 그리 좋지 못했지만 어쨌든 다시 싸우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산타 크루스와의 경기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내 생각에 산타 크루스는 아직 수퍼밴텀급까지 감량이 가능해보이지만 이름값 있는 선수를 상대로 세계 타이틀전을 치른다면 내가 월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내 체급과 페더급에서는 여러 선택지가 있다."





경기 후 라커룸에서 인사하는 프램튼과 퀵, 그리고 웨인 루니.






타 기구의 수퍼밴텀급 챔피언들이 자신을 두려워해서 피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던 기예르모 리곤도는 이번에도 프램튼 vs. 퀵의 승자에게 자신을 피하지 말고 경기를 받아들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Sky 해설진은 경기 후 분석 프로그램에서 실제로 맨체스터 아레나에서 경기를 관전하는 리곤도를 목격했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이미 북미 시장에서 한번 매장당한 경험이 있는 리곤도가 과연 다시 큰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리곤도는 경량급 최고 스타 중 하나였던 노니토 도나이레를 상대로 큰 주목을 받으며 승리하는 굉장한 기회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자신을 어필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고, 결국 HBO에게 외면당하며 북미 시장에서 쫓겨나야만 했다.


작년에 리곤도는 제이지의 스포츠 매니지먼트 락 네이션과 계약을 체결하며 간신히 북미 시장에 다시 발을 들일 수 있었지만, 그의 태도가 예전에 비해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리곤도는 미국으로 망명한지 7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인터뷰를 하려면 여전히 스페인어 통역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다.






프램튼 vs. 퀵 경기가 끝날 무렵, 대서양 건너편 LA에서는 레오 산타 크루스가 자신의 페더급 타이틀 첫 방어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산타크루스가 상대하게 될 키코 마르티네스는 프램튼과 퀵 두 선수를 모두 상대한 전례가 있었다. 얼마 전까지 수퍼밴텀급에서 활동하다가 페더급으로 월장한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산타크루스가 프램튼, 퀵을 모두 상대해본 키코 마르티네스를, 그것도 프램튼 vs. 퀵 경기와 같은 날에 치르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했다.


프램튼 vs. 퀵은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지만, 산타 크루스는 변함없는 경기 스타일로 메히칸 팬들이 자신에게 열광하는 이유를 증명했다. 라운드당 펀치 시도 회수가 평균 82회 이상인 무시무시한 볼륨 펀처 산타 크루스는 1라운드가 채 2분이 지나기도 전에 마르티네스를 두 번이나 다운시켰다. 산타 크루스 vs. 마르티네스 1라운드 동안 산타 크루스가 시도한 펀치 회수는 무려 140회였다. 터프한 마르티네스는 1라운드의 다운에도 불구하고 산타크루스를 한때 로프에 몰아넣는 모습까지 선보이며 분투했지만, 결국 5라운드에서 TKO로 패하고 말았다.


알 헤이먼과 에디 헌은 이전에도 PBC를 비롯한 여러 무대에서 경기를 합작한 전례가 있었고, 누가 봐도 프램튼 vs. 퀵과 산타 크루스 vs. 마르티네스는 서로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는 경기였다. 이런 상황을 의도했다는걸 증명하듯 PBC와 쇼타임의 SNS 계정에서는 양측의 경기를 노골적으로 한데 묶는 메세지를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미디어에서도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디어에서는 경기 전부터 선수들에게 대서양 건너편에서 같은 날에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에 대해 인터뷰했다. 경기 후에도 방송국 해설진과 기자들은 산타 크루스에게  프램튼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선수의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레오 산타 크루스 - "누구도 상대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일단은 마레스와 재경기를 치르고 싶다. 프램튼이 페더급으로 월장한다면 나는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


프램튼과 산타 크루스가 말한 것처럼 이들에게는 마레스 2차전/퀵 2차전 외에도 여러 가지 선택지가 남아 있기 때문에 이 둘의 경기는 당장 성사되지는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러나 어쨌든 프램튼 vs. 퀵은 맨체스터 아레나를 2만 관중으로 채웠고, 산타 크루스는 현재 서부 연안과 남부의 메히칸 팬들이 가장 열광하는 스타 중 하나다. 프램튼과 산타 크루스가 미래에 맞붙게 될 경기는 영연방, 아일랜드계, 메히코계 복싱 팬들에게 있어서 한때 성사될 뻔 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안타깝게도 무산된 칼 프로치 vs. 차베스 주니어의 아쉬움을 달래줄 수 있는 큰 이벤트가 될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 리곤도가 끼어들 여지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4년 유리오르키스 감보아를 충격적인 KO로 제압한 이후 140파운드로 월장하며 2체급 챔피언이 되고 파운드 포 파운드 랭킹에도 이름을 올린 테렌스 크로포드의 앞날은 겉으로 보기에는 순탄해 보였으나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알 헤이먼과 관계가 끊어진 후 크게 빈약해진 HBO의 선수진과 탑랭크 프로모션의 부족한 매치메이킹 능력이 겹치면서 크로포드는 좋은 경기를 계속해서 치르며 흐름을 이어나갈 기회를 얻지 못했다. 실제로 크로포드는 140파운드 체급으로 월장할 때에도 상대를 구하지 못해서 경기를 한 달 뒤로 연기해야만 했으며, 이번에도 매니 파퀴아오를 상대할 기회를 놓치고 헨리 행크 런디를 상대로 큰 의미가 없는 경기를 치러야만 했다.


펠릭스 티토 트리니다드, 미겔 코토를 이어서 뉴욕의 푸에르토리코계 팬들을 끌어모을 것으로 기대받는 펠릭스 베르데호가 코메인 이벤트에서 판정승을 거둔 후, 크로포드와 런디가 링 위에 올라섰다. 경기 전부터 치열하게 신경전을 벌이던 양 선수는 기자회견장에서 서로를 밀치는 모습까지 연출했고, 크로포드는 코발레프가 파스칼을 상대로 그랬듯 런디에게 최대한 많은 고통을 줄 것이라며 이를 갈던 상태였다. 


1라운드 중반부터 사우스포로 스위치한 크로포드는 2라운드부터 앞손을 사용해 런디를 압박했고, 마침내 5라운드에서 런디를 다운시킨 후 TKO승을 거두게 된다. 크로포드는 TKO 선언 직후에도 런디에 대한 분노을 억누르지 못하는 모습을 잠시 보였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런디와 1년 이상 SNS로 주고받은 설전 때문에 그의 입을 다물게 해주길 원했다고 털어놨다.


크로포드의 프로모터 밥 애럼은 크로포드가 다가오는 6월 LA의 더 포럼(The Forum)에서 다음 경기를 치를 예정이고, 루슬란 프로보드니코브와의 경기를 추진 중이며 성사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복싱 이야기 말고 잠깐 딴 얘기를 하자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