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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you write about your life there's a lot of things that you think about that you regret. It's interesting, because one of the things I regret the most is spending so much time focused on wrestling as opposed to focusing on my family." - Bryan Danielson (15/07/30, Interview)



다니엘슨이 프로 레슬링을 좋아하던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된 것은 중학교 때였다. 이번에는 단순히 프로 레슬링을 시청하는 선에서 즐기는 것이 아닌, 프로 레슬링을 직접 따라 하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학교 친구들이었던 Tony Sajec, Schuyler Parker 그리고 John Manio 는 Backyard Champions Wrestling (이하 BCW) 이라는 단체를 만들면서 활동하였는데, 그 누구보다도 프로 레슬링을 좋아하는 아이였던 다니엘슨이 이러한 활동에 빠질 리가 없었다.

아직 15세도 되지 않았던 아이들이 즐겼던 프로 레슬링 놀이였던 만큼 종종 아이들끼리 서로 경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주로 아이들의 상대가 되었던 것은 BCW의 챔피언이었던 커다란 테디 베어 인형인 Big Bad Brown이었다. 하지만 Big Bad Brown 이 은퇴를 하게 되자(?), 다니엘슨이 활동하던 BCW에는 큰 변화가 찾아오게 된다. 처음에는 Big Bad Brown 의 주인이었던 Tony Sajec 의 집에서 모여 프로 레슬링을 하며 놀았지만, 나중에는 다니엘슨의 집에서 모이면서 놀았고, 이렇게 프로 레슬링을 시작으로 이어진 친구들과의 인연은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져 주로 다니엘슨의 집에서 WWF의 PPV를 결제하고 시청하는 폭넓은 프로 레슬링 동아리의 성격으로 변하게 되었다.



브라이언 다니엘슨: (BCW의) 쇼가 시작되기 전, 우리는 방안의 모든 것을 정리한 뒤, 바닥에다가 매트리스를 깔았다. 일반 방이 BCW 아레나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방안의 코너는 턴버클이었고, 벽은 로프 역할을 해주었으며, 만약 우리가 마초맨의 엘보우 드랍이나 탑로프 기술을 쓰려고 했을 땐 소파가 탑로프가 되어주었다.



흔히 백야드 레슬링에는 두 가지 부류가 존재한다. 하나는 위험천만한 액션과 선혈이 낭자하는 하드코어 백야드 레슬링이고, 또 하나는 프로 레슬링을 흉내 내는 선에서 그치는 백야드 레슬링이다. 믹 폴리는 본격적으로 프로 레슬러로 활동하기 전에 자신의 미친 액션을 녹화하며 즐기던 하드코어 백야드 레슬링쪽에 가까웠던 인물이었다면, 다니엘슨은 후자에 가까운 백야드 레슬링을 즐기곤 했다. 물론 두 가지 다 위험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다니엘슨 역시 당시엔 믹 폴리와 같은 미친 짓은 하지 않았기에 같은 백야드 레슬링이라도 자기가 하는 백야드 레슬링은 안전하다고 생각했지만, 프로 레슬러로 활동하고 난 뒤에는 이러한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프로 레슬링의 무서움을 느끼게 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하루는 친구와 백야드 레슬링을 하던 도중, 소파 위에서 트위스팅 센턴을 쓰다가 그만 친구인 Kristof 의 턱을 부러뜨리게 되었다. 다니엘슨의 기술을 잘못 맞아 턱이 부러진 Kristof는 2주 동안 죽만 먹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다니엘슨은 본인의 어머니에겐 프로 레슬링과 관련된 활동을 철저히 비밀로 여겼다. 당연히 Kristof 의 턱을 부러뜨린 사건은 절대 다니엘슨의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다니엘슨의 어머니가 Kristof 의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었고, 여기서 다니엘슨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사고를 친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Kristof 의 어머니는 아들이 놀다가 턱이 부러진 사건에 대해 화를 내기는커녕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이 사건을 들은 다니엘슨의 어머니는 다르게 반응했다. 피해자의 어머니와 가해자 어머니의 반응이 뒤바뀐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다행히 다니엘슨은 오늘날까지 Kristof 와는 물론, 이 시기 함께 프로 레슬링을 하며 지냈던 친구들과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브라이언 다니엘슨: 비록 내가 녀석을 부상 입혔지만, 운 좋게도 Kristof 는 오늘날까지 내 친구로 남고 있다. 녀석과 Evan 그리고 Mike는 모두 내 결혼식에서 들러리를 맡기도 했지. 요즘에도 내가 Kristof 녀석을 볼 때마다 녀석은 지금 나의 턱을 부러뜨려도 되냐면서, 언젠가 복수를 꼭 하겠다고 말하곤 한다.




세월이 흘러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도 친구들과 함께 프로 레슬링을 하며 지내던 다니엘슨이었지만, 친하지 않은 사람한테는 내성적이고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여전했다. 다니엘슨의 이러한 성격은 이성 친구나 여자친구를 만드는 데 큰 어려움을 주었다.

학창 시절 다니엘슨이 이성과 사귀었던 적은 딱 한 번이었다. Aberdeen 에서 1시간 30분 정도 먼 곳에 있는 Castle Rock 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았을 때였는데, 자기보다 선배였던 Becky 와 사귀었던 게 전부였다. 다니엘슨은 오늘날까지도 Becky 가 무슨 이유로 자신과 사귀었는지 알지 못하고 있는데, Castle Town 은 자그마한 도시였고, 자기는 전학생이었으니 좋아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만을 하고 있다.

Becky 와 사귀면서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는데, 이는 서로 끈적한 키스를 하며 뜨거운 시간을 보내던 도중에 있었던 일이었다. Becky 가 다니엘슨에 올라탄 후, 다니엘슨의 귀에다가 "Be gentle," 이라고 귓속말을 소곤거리자, 갑자기 미친 듯이 웃어젖히던 다니엘슨이 실수로 밀치는 바람에 Becky 가 소파 위에서 떨어지는 사건도 있었다. 또 하루는 두 사람은 Becky 의 부모님 집에서도 동일한 행위를 하곤 했다고.


아 Tㅂ 쓰다보니 짜증나서 못 쓰겠네요 ㅂㄷㅂㄷ

다니엘슨 이놈 낮져밤이인가보죠? ㅂㄷㅂㄷㅂㄷ

여자가 비 젠틀이라고 하니 쳐웃어제끼는 인성보소 ㅡㅡ


두 사람이 무슨 이유로 헤어졌는지 다니엘슨은 기억하지 못한다. 다니엘슨은 이후 그녀에게 여러번 전화를 걸었지만, 다시 사귀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Becky 는 자신보다 연상이었던 대학생 남자와 교제를 시작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아예 없던 일이 되었다. 다니엘슨은 Becky 가 사귀던 대학생 남자의 외모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자신과는 다른 일자 눈썹을 가진 남자였다고.









다니엘슨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만났던 순간
2013년 크리스마스



힘겨운 역경을 함께 이겨낸 가족이었던 만큼 그 누구보다도 가족에 대한 애착이 컸던 다니엘슨에게 있어 자서전을 집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바로 고인이 된 아버지와 관련된 부분을 쓸 때였다고 밝히고 있다. 자서전 역시 돌아가신 아버지가 죽기 전에 다니엘슨에게 남긴 선물을 열어보곤 울음을 터뜨렸다며 이때의 기억을 회상하면서 자서전은 끝난다. 비록 다니엘슨의 부모님은 이혼을 했지만, 다니엘슨의 어머니 역시 술을 마시지 않았던 상태의 前 남편이 자기가 여태까지 만난 남자 중 최고의 남자였다고 오늘날까지 추억에 잠기곤 한다고 다니엘슨은 말하고 있다.

다니엘슨의 아버지 집안은 술과 악연이 깊었다. 6남매 중 막내였는데, 남매는 상당히 극단적인 가족력을 가지고 있다. 일부는 술이나 마약 문제를 겪고 있었던가 하면, 일부는 아예 손도 대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다니엘슨의 아버지는 평생 알콜과 싸워야만 했었던 전자에 속한 케이스였다.

빌리 수에 의하면 다니엘슨은 술 문제를 제외하면 아버지와 성격이나 모든 면에서 똑같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니엘슨은 아버지와의 비교를 항상 칭찬으로 여겼는데, 이는 본인의 아버지가 똑똑하면서도 친절하고 또 재밌었던 남자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니엘슨의 부모님은 고등학교 때 첫사랑으로 만나 매우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한 커플이었다. 두 사람이 결혼했을 당시 어머니는 20살이었고, 아버지는 19살이었다. 결혼함과 동시에 남편이 공학 학위를 따길 바라며 뒷바라지를 해주었지만, 부인의 바람과는 반대로 벌목 산업에 뛰어들어 일을 하기 시작했다. 다니엘슨의 아버지는 본인이 좋아해서 택한 직업이었지만, 큰돈을 벌기에는 이상적인 직업은 아니었다.

다니엘슨 가족은 아버지의 일자리로 인해 어렸을 적 여러 지역을 옮겨가며 거주했다. 다니엘슨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Utah 주의 Vernal 에서 살아야만 했고, 6개월 뒤엔 Oregon 주의 Albany 로 이사를 하여, 나중에는 본인이 태어난 고향인 Aberdeen 으로 돌아왔다. 이 시기에 다니엘슨의 아버지는 알콜 중독 치료를 받고 있었다. 자신의 남편이 알콜 중독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 시기가 바로 이때였는데, 다니엘슨의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아버지가 술에 취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막았다고 한다. 하지만 치료를 받아가면서까지 알콜 중독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다니엘슨의 할아버지가 폐기종으로 사망하고, 1년 뒤 다니엘슨의 할머니가 암으로 사망하자 아버지가 술을 마시는 일은 훨씬 더 잦아졌다.



브라이언 다니엘슨: 하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아버지를 사랑했다. 내가 아버지의 음주 문제를 언급한 이유는 단지 내가 왜 술을 입에 대지도 않는지 설명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난 어린 애들이 술을 마시는걸 볼 때마다 매우 부정적으로 받아들였고, 전혀 멋지지 않은 행동이라 생각했다.





아버지와 친누나와 함께 낚시길



이혼을 한 뒤에도 다니엘슨은 아버지를 찾아가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물고기가 불쌍해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가는 것은 싫어했지만, 아버지와 함께 놀거나, 아버지가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직접 찾아와 다니엘슨이 스포츠를 하는 모습을 관람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산타가 분장한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진 아버지의 집을 찾아가 산타로 분장한 아버지로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으며 함께 보냈다. 다니엘슨에 의하면 자신이 받았던 크리스마스 선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선물은 바로 30여 개의 ECW 하우스 쇼 비디오 테이프였다고 한다.

다니엘슨이 항상 부모님께 감사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는 바로 두 사람 모두 이혼을 한 뒤에도 서로에 대해 험담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다니엘슨은 두 사람은 서로 이혼을 했지만, 분명 서로가 재결합을 원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훗날 다니엘슨의 아버지는 Darby 라는 멋진 여성과 재혼을 했고, Darby 는 전 부인의 자식이었던 다니엘슨과 빌리 수를 마치 본인의 친자식처럼 대해주었다. 다니엘슨은 본인의 아버지가 새롭게 재혼한 여성을 환상적인 여자라고 언급하며, 의붓어머니에 대해선 좋은 기억밖에 가지지 않고 있었다.





어머니, 친누나와 함께



반면 다니엘슨의 어머니는 다니엘슨이 본격적으로 프로 레슬링을 시작할 때까지 재혼을 하지 않았는데, 전편에서도 언급했던 부분이었지만 남편과의 갑작스러운 이혼으로 인해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혼 당시 고졸이란 학력으로 인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던가. Satsop 원자력발전소에 자발적으로 나가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나중엔 임직원으로 고용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원자력발전소가 완공되지 않은 탓에 고정 수익을 주는 일자리로 이어지진 못했다.

하지만 힘든 시기를 겪는 동안에도, 다니엘슨은 본인의 어머니로부터 단 한 번도 불평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다니엘슨의 어머니는 부족한 학력을 채우기 위해 지역 주민을 위한 공립대학에도 다니기 시작했고, 동시에 구할 수 있었던 일을 하여 부족함 없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브라이언 다니엘슨: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께서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었는지 아마 난 평생을 가도 알지 못할 것 같아. 내가 누나와 여러 활동을 하고 난 뒤에도 어머니께선 항상 우리를 데리러 오셨고, 우리의 경기를 직접 관람하러 오시기도 했으며, 매끼도 꼬박꼬박 챙겨주셨거든. (우린 한 번도 바깥에서 밥을 먹지 않았어)



부족했던 학력을 메꾸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어머니의 결실은 다니엘슨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며칠 전에 맺어졌다. 1999년에 학사 학위를 따내어 졸업한 것이다. 다니엘슨의 어머니가 학위를 따낸 분야는 바로 상당 심리학 분야였다. 이 전공을 살려 현재까지도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다고. 그리고 다니엘슨이 본격적으로 프로 레슬링을 시작할때쯤, 다니엘슨의 어머니는 Jim 이라는 남자와 재혼을 하게 되었고, 두 사람은 현재까지 행복하게 살고 있다.





부모의 이혼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국가의 문화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나 어머니를 둔 경우는 동서양 가릴 것 없이 주변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고 예민한 시기의 아이에게 있어 이때의 기억이 트라우마가 된 나머지 성인이 되어서도 아픔과 상처로 남는 경우가 많다. 알콜 중독자 아버지가 본인의 삶에도 크게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유명한 CM 펑크를 생각해보자.

개인적으로 인디 프로 레슬링 업계를 13년 넘게 지켜봐 오며 느꼈던 것은, 인성 부분에서 모두에게 좋은 소리를 듣는 선수는 극소수였다는 점이었다. 누군가는 그 선수에 대해 좋게 말하는가 하면, 다른 누군가는 그 선수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고 있어 대놓고 본인의 감정을 드러내곤 했다. 혹은, 이언 로턴처럼 만인에게 손가락질받는 사람도 있었다.(*)

이러한 인디 프로 레슬링 업계의 현실에도 불구, 브라이언 다니엘슨은 자신을 향한 악담을 찾아보기는커녕, 사람을 막론하고 훌륭한 평판을 듣던 보기 드문 인물이었다. AJ 스타일스는 2013년에 올랜도에서 다니엘슨을 우연히 만났던 이야기를 했는데, WWE에서 이미 대성공을 한 스타였음에도 불구, 그의 태도는 인디때 보여주던 태도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회상하며 다니엘슨의 성공에 매우 기쁘다고 밝혔다. 케빈 오웬스는 다니엘슨이 은퇴를 발표했을 때 본인의 트위터를 통해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음에도 자신과 새미 제인에게 매우 잘해주었다며 본인의 캐릭터를 깨고 트위터를 통해 다니엘슨을 향한 진심 어린 존경심과 함께 은퇴를 축복해줄 정도였다. 케빈 오웬스 뿐만이 아니라 다니엘슨의 은퇴식은 전직, 현직 프로 레슬링 종사자들이 거의 모두 하나가 되어 그의 은퇴를 축복해주었다는 것을 떠올려보자.

생각해보면  브라이언 다니엘슨의 어린 시절 성격과 그가 겪었던 힘든 가정사를 생각했을 때 이는 놀라울 만한 일이다. 아마도 이것은 이혼과 가난이라는 힘든 가정사에도 불구, 자식들에게 최선을 다했던 부모님의 헌신과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은채 겸손함을 잃지 않았던 브라이언 다니엘슨 본인의 노력이 빚어낸 결과물이 아니었을까.



(*) 참고하면 좋을 글:

이언 로튼의 인간성





PS- 전반부와 후반부의 분위기가 차이가 컸던 만큼 원래 이번 편은 반으로 잘라 나눠서 올릴까 고민을 했었습니다. 고민하다가 하나로 묶어서 올리기로 했고, 후반부 전개를 위해 전반부의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좀 헐렁하게 만들어두었습니다. ^^;

개인적으론 현재까지 글을 쓰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자서전을 읽었을 때 국내에 꼭 한번 소개를 해보고 싶었던 부분이었어요. 다니엘슨의 곁에는 훌륭한 부모님뿐만 아니라 훌륭한 선생님도 두고 있었는데, 지난 편에서 소개해드렸던 카터 선생님이 다음 편에서 다시 등장하게 될 예정입니다.

이언 로턴을 언급한겸 왜 이언 로턴이 욕을 먹는 프로모터인지 궁금해하실 분을 위해 예전에 제가 써두었던 글을 첨부해두었습니다. 원문의 사진 링크는 사라진 지 오래지만, 그래도 글만 보셔도 이해하시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다시 확인해보니 잘린 부분은 당시 제가 글에다가 첨부했던 크리스 히어로의 인터뷰 부분이 전부네요. ㅎㅎ;

그럼 다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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