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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 알리의 씁쓸한 말년과 대니얼 브라이언의 은퇴를 바라보며




무하마드 알리를 가까이서 지켜본 수많은 인물들은 알리가 거의 자기학대나 다름없는 가혹한 스파링을 소화했다고 입모아 증언하고 있다. 노먼 메일러는 저서 <The Fight>에서 알리가 포먼의 강펀치에 대비하기 위해 자이레의 훈련 캠프에서 실전 이상으로 가혹한 스파링을 소화했다고 기술했으며, 알리의 평전을 쓴 이쉬마엘 리드는 알리가 스파링 파트너들에게 단순한 스파링이 아니라 전력을 다해 싸울 것을 요구했고, 심지어 이들의 펀치를 의도적으로 얻어맞는 습관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알리의 이런 습관은 선수 생활 초기부터 이어진 것이었다. 알리가 아직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20대 초반, 플로이드 패터슨의 트레이너로서 알리를 상대했던 커스 다마토는 알리가 스파링에서 지나치게 많이 얻어맞기 때문에 건강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일찍이 경고한 적이 있었다. 알리는 왜 이런 무모한 자기학대를 감행한 것일까. 맷집은 마치 근육처럼 단련할 수 있고, 더 많이 맞을수록 펀치를 견디는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 때문이었다. 그런 알리에게 있어서 뇌 손상으로 인한 고통스런 말년은 예고된 비극이나 다름없었다.


알리의 장남인 무하마드 알리 주니어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한 적이 있다. "어렸을 때 일이에요. 하루는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먹을 것을 사러 잠깐 차에서 내린 적이 있어요. 그런데 가게에서 나와보니까 차가 온데간데 없더라고요. 결국 집에 전화를 걸어서 새어머니께 말씀드렸죠. '아버지가 절 놓고 가셨어요. 대체 왜 그러셨는지 영문을 모르겠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다시 데리러 왔는데, 왜 절 놓고 갔냐고 여쭤보니까 이렇게 대답하시는 거에요. '널 태우고 왔다는걸 깜빡했구나.' 아버지의 몸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어요."




무하마드 주니어의 말처럼 알리는 현역 시절, 정확히 말하면 30대의 나이에 이미 뇌 손상 후유증이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는 상태였다. 래리 홈즈와의 경기를 3개월 앞둔 시점에서 38세의 알리는 네바다 주 체육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병원에서 건강 진단을 받게 된다. 진단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곧바로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밝혀진 진단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았다.


- 알리는 손가락으로 자기 코를 건드리려고 할 때 조금 시간이 걸렸다.

- 회화를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으며, 한 발로 서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건강 검진 결과가 이렇게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주 체육위원회는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았고 경기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알리는 10라운드 동안 단 한 라운드도 따내지 못했을 정도로 홈즈에게 처참하게 얻어맞았고, 결국 10라운드가 끝나자 알리의 코너에서는 경기 포기를 선언했다. 경기 후 알리의 팀원이자 링 닥터였던 퍼디 파체코는 알리의 상태를 진단한 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이런 경기에 연관된 모든 인물들은 체포되어야 마땅하다. 이건 복싱 경기가 아니라 범죄다."


예나 지금이나 일부 사람들은 알리를 맹목적으로 찬양하기 위해 이 사태를 알리의 투혼, 또는 어떠한 어려운 상대도 피하지 않는 용기로 포장하려 하지만 이는 완전히 잘못된 짓이다. 복싱, MMA, 프로레슬링 등의 극히 위험한 종목에 종사하는 선수들은 건강과 목숨을 담보로 경기에 임하기 때문에 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위험에 노출되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막아야 하며, 바로 이것이 체육위원회 또는 선수가 속한 단체 등이 해야 할 일이다.


무하마드 알리가 선수 생활 말년에 겪은 참사는 뇌 손상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이며, 단체나 커미션 측이 선수 안전 보호라는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MMA 베테랑 주심 존 매카시는 트위터에서 한 팬에게 "지금까지 본 가장 끔찍한 부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다음과 같이 답변한 적이 있다. "내가 본 최악의 부상은 팔이 뒤틀리는 것도, 정강이가 꺾여 나가는 것도 아니었다. 바로 뇌진탕이었다."


대니얼 브라이언이 어제 RAW에서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브라이언은 2014년 레슬매니아 30에서 극적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후 연이은 부상으로 휴식과 복귀를 반복하다가 지난 2015년 뇌진탕이 재발하면서 다시 한 번 긴 공백기를 가진 상태였다.


얼마 전 브라이언이 UCLA 부속병원에서 받은 외진에서 프로레슬러 활동에 지장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WWE 의료진 측의 반대로 인해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 국내에도 소개되면서 일부 팬들은 이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환자의 건강 진단 결과는 중요한 프라이버시이며, 단체 측이나 의료진 측에서 브라이언의 상세한 건강 검진 결과를 환자의 동의 없이 공개하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브라이언의 발언과 다수의 보도를 바탕으로 미루어 볼 때, 브라이언의 뇌진탕이 결코 가볍게 다룰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확실해보인다. 대니얼 브라이언의 뇌진탕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지난 2015년 출간한 자서전에서 브라이언은 처음 뇌진탕을 겪은 것이 만 18세였던 1999년이었으며, 어제 한 RAW의 은퇴식 세그먼트에서는 레슬링 커리어를 시작한 첫 5개월 동안 무려 3번의 뇌진탕을 겪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브라이언은 어제 RAW의 은퇴식 세그먼트에서 "열흘 전 받은 검사에서 내 뇌의 상태가 생각만큼 괜찮지 않다는 결과를 통보받았다."라고 밝혔으며, PWInsider에서는 브라이언이 해당 날짜에 뉴욕에서 뇌 정밀검진을 받았다는 보도를 통해 이를 확인했다. 데이브 멜처 또한 브라이언이 받아야 할 검사는 아직 남아 있으며 상황에 따라 진단 결과가 더 나쁘게 나올 수도 있고, 은퇴는 브라이언이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고 보도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복귀를 강력하게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브라이언이 갑작스레 은퇴를 결심할 정도라면, 그가 받은 검사 결과는 상당히 심각한 것으로 짐작된다.


프로레슬링은 사전에 정해진 각본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복싱이나 MMA, 아마레슬링과 같은 스포츠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사실 때문에 프로레슬링이 대단히 위험하고 가혹한 장르라는 사실은 너무 쉽게 외면받는 경향이 있다.한 가지 씁쓸한 점은 WWE만이 아니라 프로레슬링 업계 전체에서 선수들의 부상과 혹사는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에, 프로레슬링 팬들조차도 이에 대해 다소 무심한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대니얼 브라이언은 프로레슬링의 역사를 뒤져봐도 보기 드문 진정한 'People's Champion'이며, 그의 은퇴에 대해 팬덤과 선수, 업계 관계자 등 업계 전체가 축하와 격려의 메세지를 보내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심지어 WWE 탈단 이후 프로레슬링에 관해서는 언급조차 삼가고 있는 CM 펑크조차 대니얼 브라이언에게는 이례적으로 메세지를 보냈을 정도). 이런 선수의 은퇴에 팬들이 큰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며, 의견이 분분한 것 또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수의 건강과 안전이다. 브라이언의 뇌진탕 문제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접근한 WWE의 태도는 적어도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로만 본다면 충분히 납득할 만 하고,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WWE는 브라이언의 몸 상태에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복귀하는 것을 막았으며, 단체 내에서 발생한 브라이언의 부상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고 그의 위상에 걸맞는 고별 무대까지 마련했다.


랜스 스톰은 브라이언의 은퇴를 지켜보며 다음과 같은 메세지를 남겼다. "나는 오늘 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로 결심했다. 사전 검사와 (부상에 대한) 인식은 미래에 발생할 수도 있는 비극을 피하게 해 줄 것이다."


부디 브라이언의 결정이 은퇴 이후의 삶을 위한 현명한 선택이 되었기를 바라며, 팬덤에서도 선수 부상 및 건강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인식 변화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고, 나아가 WWE의 선수 관리 및 혹사, 부상 문제 또한 이번 일을 계기로 긍정적인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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