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Some dragons are real. . . #ThankYouDanielBryan" - Cody Rhodes (16/02/08, Twitter)






1981년 5월 22일, 총 인구가 17,000명이 안되는 작은 도시이자 무엇보다 故 커트 코베인이 태어난 도시로 유명한 Aberdeen 에서 브라이언 로이드 다니엘슨이 태어났다. 태어날 당시 체중이 10파운드 이상이었을 정도로 우량아였던 다니엘슨은 자기보다 더 뚱뚱했던 아기는 보질 못했다고 회상하곤 했다.

브라이언 다니엘슨의 어머니에 의하면 다니엘슨은 어렸을 때부터 매우 조용한 성격을 가진 아이였으며, 또래 아이들과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탓에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반대로 다니엘슨의 아버지는 아들을 사람들과 매우 어울리기 쉬운 성격을 가졌으면서도 동시에 고집이 센 아이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역시 친아들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은 틀리지 않았던 걸까. 다니엘슨의 고집적인 모습은 프로 레슬링 커리어 내내 두드러지는 부분 중 하나였다.

어린 시절 다니엘슨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사람은 바로 본인의 친누나인 Billie Sue 였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조용한 성격을 가졌던 다니엘슨과는 달리, 빌리 수는 매우 활발한 성격을 가진 아이였고, 다니엘슨은 그런 누나를 따라다니면서 누나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는 아이가 되었다. 오죽하면 다니엘슨은 어렸을 적 입을 떼기 시작했을 때, 말을 더듬는 습관이 없었지만, 말을 더듬었던 친누나를 따라 하던 탓일까, 다니엘슨 역시 말을 하면 할수록 더듬게 되었다. 다니엘슨은 같은 피를 공유하고 있는 남매였지만, 친누나와의 정반대였던 성격을 볼 때마다 감탄을 하곤 했다.

훗날 전 세계 사람들이 시청하는 WWE의 링에서 수만 명의 사람들을 마이크웍으로 사로잡았던 다니엘슨이었지만,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주로 나타나듯이, 어린 시절에는 반에서 교과서를 읽는 것조차 도 매우 두려워했던 아이였다. 사람들의 앞에 나서서 스포라이트를 받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니엘슨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학창 시절을 경험했다면 한 번쯤은 창피한 경험을 겪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 다니엘 브라이언이 학창 시절 때 겪은 창피한 기억도 본인의 내성적인 성격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국어 시간, 다니엘슨의 담임을 맡고 있었던 카터 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 에세이를 읽으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용기 있게 에세이를 읽고 자리에 앉을 때마다 다니엘슨의 차례는 다가왔고, 다니엘슨은 스스로 이건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최면을 걸어봤지만 터질 것 같았던 본인의 심장을 진정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거기에 다니엘슨의 말을 더듬는 습관은 이러한 상황을 악화시키기 충분했다. 이때의 순간을 죽을 정도로 두려웠다고 회상하는 다니엘슨은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말을 더듬기 시작했고, 더듬거림이 점차 심해지자 급기야 읽기를 멈추기까지 했다. 이마에선 굵은 식은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고, 결국 다니엘슨은 카터 선생님에게 자기는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포기하고 말았다. 반 아이 중에서 에세이를 읽지 못한 유일한 학생은 다니엘슨이었으며, 이 기억은 다니엘슨 본인에게 있어 잊을 수 없는 창피한 학창 시절의 경험으로 남게 되었다.

본인의 인생을 바꾸게 한 프로 레슬링을 접하게 된 것도 역시 바로 이 시기였다. 다니엘슨은 프로 레슬링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사랑에 빠졌다고 하니, 어떻게 보면 다니엘슨의 첫사랑은 프로 레슬링이었을지도 모른다. 재밌게도, 활동하는 수많은 프로 레슬러들이 영상을 통해 프로 레슬링과 사랑에 빠졌다면, 다니엘슨은 사진과 글을 통해서 프로 레슬링과의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니엘슨이 다니던 초등학교에 Abe 라는 한 전학생이 왔던 날이었다. Abe 는 당시 다니엘슨과 가장 친하게 지냈던 아이인 Warren 과 함께 어울렸는데, 학교를 마치고 나서 두 아이는 다니엘슨의 집으로 놀러 가게 되었고, 이것을 보여줬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고 했던 Abe가 가방 속에서 꺼냈던 것은 바로 수많은 프로 레슬링 잡지였다.

비록 Warren 은 Abe 가 꺼낸 물건의 정체를 보고 빠르게 흥미를 잃었지만, 다니엘슨은 달랐다. 터질듯한 근육을 가진 선수들. 키가 큰 선수들, 키가 작았던 선수들. 다양한 기믹으로 사진을 촬영했던 선수들의 모습을 보곤 바로 프로 레슬링에 빠지게 된 것이었다. 어린 시절 독서에 그다지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던 다니엘슨은 Abe 를 졸라 프로 레슬링 잡지를 빌렸고, 잡지를 통해 프로 레슬링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 했다. 그 와중에도 Abe 가 당부했던 점을 지키기 위해 다니엘슨은 행여나 부모님께 들킬까 봐 잡지를 숨겨놓았지만, 얼마 안 가 부모님께 들통이 나고 말았다. 그러나 다니엘슨의 부모님은 화를 내지 않았고, 오히려 다니엘슨이 독서에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과, 프로 레슬링이 다니엘슨을 행복하게 했다는 점을 좋아했다고 한다. 이윽고 다니엘슨의 부모님도 다니엘슨에게 프로 레슬링 잡지를 사다 주기 시작했고, 이는 학교를 많이 빠지곤 했던 다니엘슨에겐 책을 많이, 그리고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다니엘슨이 학교를 빠지게 된 이유는 본인의 성격적인 문제가 아닌 다니엘슨을 집요하게 괴롭혔던 알레르기 때문이었다. 다니엘슨은 잔디와 나무 그리고 거의 모든 동물이 휘날리는 털에 알레르기가 있던 나머지 어렸을 때부터 고생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 매주 주사를 빠짐없이 맞았지만, 스포츠와 같은 활동적인 운동을 할 때는 잔디로 인해 상태는 딱히 나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때론 알레르기로 인해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부은 상태로 일어나기도 했고, 기도 쪽에 문제가 생겨 학교를 주기적으로 결석해야만 했다. 12월에는 근 한 달여 간을 통째로 쉬었다.





(친누나와 아버지와 함께)



프로 레슬링 업계에선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브렛 하트와 크리스 벤와의 뒤를 이을 테크니컬 레슬러로 소문이 자자했던 다니엘슨이지만, 정작 다니엘슨은 학창 시절 그 어떤 운동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진 못 했다. 그러나 다니엘슨은 굳이 스포츠를 한다고 해도 꼭 최고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마인드로 운동을 하던, 스포츠만큼은 그저 즐기려는 성격을 가진 아이였다. 그런 다니엘슨에게 있어 스포츠는 그저 즐기기 위한 게임의 일부분이었으며, 승패를 신경 쓰지 않다 보니 연습 시간을 좋아했다. 승리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자유로운 상태에서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을 더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전반적으로 모든 종목을 좋아하던 다니엘슨의 스포츠를 향한 애정은 곧 스포츠 카드 콜렉션으로 바뀌었다. 비록 순수한 취미 생활이었다고 하기엔, 다니엘슨은 스포츠 카드 콜렉션을 하나의 투자라는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았지만 말이다. 학창 시절 야구를 즐겨 했던 다니엘슨은 야구 카드 콜렉션을 시작으로, 농구와 풋볼 카드를 모으기 시작했는데, 재밌게도 남들에겐 콜렉션의 대상이었던 마이클 조던과 같은 유명 선수의 카드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성격은 카드를 콜렉션 하는데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되어, 나중에는 스타까진 아니었지만, 그냥 성적이 좋았던 무난했던 선수들을 모으게 되었다고 한다.

카드 콜렉션을 향항 다니엘슨의 태도가 두드러지는 에피소드도 있다. 다니엘슨은 MLB의 아이콘이었던 켄 그리피 Jr. 의 카드보단, 로베르토 알로마나 폴 몰리토 의 카드를 더 선호했다. 나름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는 자세를 보이기도 했는데, 다니엘슨은 폴 몰리터 (주: 현재 박병호 선수가 속해있는 미네소타 트윈스의 감독) 는 매우 좋은 선수이니, 사람들이 몰리터가 얼마나 좋은 선수인지 깨닫게 되면 카드의 가치도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하루는 당시 메이저 리그계에서 가장 주가가 높았던 선수 중 한 명이었던 프랭크 토마스의 카드를 로베르토 알로마 몇 장과 바꾸기도 했다.

스포츠 카드 컬렉션을 통한 과감한 투자의 결실은 그해 여름에 맺어졌다. 다니엘슨은 친구와 함께 모아두었던 야구 카드를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비록 다니엘슨을 찾아오는 손님이라곤 카드를 살 돈이 없어 구경만 하다가 근처에서 공을 차고 놀았던 아이들이 대다수였지만, 여름 내내 장사를 한 끝에 다니엘슨의 손에는 40달러가 쥐어져 있었다. 어린 다니엘슨의 눈에는 백만 달러로 보였다는 40달러로 인해 잠시 욕심이 생긴 탓일까. 다니엘슨은 친구와 함께 40달러를 가지고 야구 카드를 더 구매하여 더 큰 투자를 했지만, 안타깝게도 나온 카드는 그렇게 좋지 못했다고 한다.


다니엘슨이 10살에서 11살이었을 무렵, 다니엘슨의 부모님이 이혼을 하게 되었다. 형편이 그렇게 좋지 않았던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온 부모님의 이혼이라 재정적인 문제가 찾아왔다. 더군다나 다니엘슨의 어머니는 고졸이라는 점으로 인해 일자리를 찾기가 힘들었기에 결국 다니엘슨과 친누나인 빌리 수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같이 신문 배달에 나설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다니엘슨은 신문 배달이 하나의 게임처럼 느껴져 힘들진 않았다고 한다.



브라이언 다니엘슨:
이론적으로 신문 배달 루트 당 우리가 벌 수 있었던 것은 한 달에 약 100달러 선이었다. 신문 배달을 통해 번 돈 중 50%는 Daily World 측에 지불을 하면, 나머지 반은 우리가 가져갈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온 수익 중 어머니께선 우리에게 용돈을 떼어주셨고, 나머지는 따로 저축을 하거나, 혹은 성당에 낼 십일조로 나가곤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익은 항상 일정하지는 않았다.



가난하게 지내야만 했던 다니엘슨의 유년 시절 때문이었을까. 다니엘슨은 사람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신문 배달을 통해 다니엘슨 가족의 수익이 일정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했다. 신문을 신청한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아내는 일도 쉽지 않았는데, 때로는 한 달 이상의 돈이 밀렸음에도 불구, 다니엘슨이 신문값을 받으러 오면 화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상대가 역으로 화를 내자, 다니엘슨은 순간 자기가 잘못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것은 본인에게도 훗날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이 사건이 있었던 이후 손님에게 돈을 받는 것을 주저하곤 했다고.

나중엔 급기야 돈이 밀려도 한꺼번에 받아도 괜찮을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다니엘슨의 망설임에서 나온 선택은 자연스럽게 고객들의 연체가 잦아지는 일로 이어졌고, 수익으로 이어져야 했을 신문 배달은 결국 빚으로 이어졌다. 다니엘슨은 사람들로부터 돈을 받는 것을 매우 싫어했기에, 훗날 손님을 대하는 노하우가 생겨서 조금 더 나아지긴 했어도 최종적으론 신문 배달을 통해 벌었어야 했던 만큼 돈을 벌지는 못했다고 회상한다.

다니엘슨이 15세가 되던 해에는 새로운 일자리를 얻게 된다. 한 살 위였던 빌리 수가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다니엘슨도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었다. 다니엘슨에게 주어진 일거리는 바닥을 닦고, 쓰레기를 비우는 일이었지만, 하루는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이 출근을 하지 않아 일손이 부족했기에 다니엘슨은 햄버거를 요리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다행히 솜씨가 좋았던 탓인지 다니엘슨은 요리를 하는 역할로 바뀌게 되었고, 그 결과 1주일에 12시간 이상을 일하게 되는데, 당시 워싱턴 주에선 다니엘슨과 같은 미성년자가 1주일에 12시간 이상을 일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가 되어 있었다. 명백히 근로기준법을 어긴 행위였지만, 다니엘슨에겐 다행히 불이익은 없었다.


다니엘슨에게 있어 힘든 시기이긴 했지만, TV를 통해 프로 레슬링을 시청하면서 프로 레슬링을 향한 다니엘슨의 애정은 더욱 깊어져 갔다. 당시 다니엘슨 가족은 TV를 많이 시청하지 않았고, 케이블도 없었기에 프로 레슬링을 시청할 기회가 없었는데, TV를 통해 얼티메이트 워리어의 활약상을 보자, 영상에는 사진이 담을 수 없는 생동감이 있었다. 당시 다니엘슨은 프로 레슬링을 보기 위해 프로그램 편성표에 대한 제대로 된 개념도 없이 그저 프로 레슬링을 시청하기 위해 채널만 수차례 돌렸던 프로 레슬링에 빠진 아이였다.

가족 중에선 다니엘슨이 유일하게 프로 레슬링의 팬이었는데, 다니엘슨의 아버지는 시애틀 시호크스를 좋아하던 NFL의 팬이었던 탓에 때론 부자간의 채널 주도권을 잡기 위한 싸움이 벌어지곤 했다. 하루는 프로 레슬링은 매주 토요일마다 중계된다는 것을 알았던 다니엘슨은 시애틀 시호크스 vs. 신시내티 벵갈스를 보려고 했던 아버지와 다투었고, 결국 프로 레슬링은 매주 토요일마다 하지 않느냐는 아버지의 의견에 수긍할 수밖에 없어 시청을 포기했던 일도 있었다. 당시 어린 다니엘슨이 가장 좋아했던 프로 레슬러는 데이비 보이 스미스와 다이너마이트 키드였다.

본인에게 프로 레슬링을 전파해준 Abe와의 인연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다니엘슨에 의하면 당시 자기 주변에 있던 애 중에서 유일하게 프로 레슬링에 빠졌던 애는 Abe 였다고 한다. 간혹 다니엘슨이 Abe 의 집으로 놀러 갈 때면, Abe가 소장하고 있던 LJN에서 발매한 WWF 장난감을 가지고 놀곤 했다. Abe 는 헐크 호건이나 제이크 로버츠 같은 당대 최고의 선수뿐만이 아닌, 스페셜 딜리버리 존스나 아웃백 잭같은 선수들을 모은 것은 물론, 링도 두 개나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프로 레슬링의 팬이었다. 그러나 그 나이대 아이들이 좋아하는 무언가에 흥미를 빨리 잃어가는 것이 흔한만큼, Abe 역시 프로 레슬링에 대한 관심을 점점 잃게 되자, 다니엘슨 주변에는 프로 레슬링을 좋아하던 친구가 남지 않게 되었다.





PS- 프로 레슬링 주제로 연재 글을 쓰는 것이 몇 년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썼던 연재글 다운 연재 글이 CZW vs. ROH의 대립 정리 글이었는데, 그걸 완성했을 때가 2010년? 2011년이었던가요? 지금 레매닷넷의 칼럼 게시판에 있는 CZW vs. ROH 대립 정리 글은 제가 마지막 파트를 손을 봐서 몇 년 뒤에 올렸던지라 원래 제 블로그에다가 올렸던 것보다 파트가 하나 더 늘어났던 걸로 기억하는데, 다행히 이번 글은 컴뱃 크리틱스에 한편 덜 올라오고, 이곳 레매닷넷에 한편 더 올라오고,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

대니얼 브라이언의 은퇴를 보면서 대니얼 브라이언쨩의 삶을 돌아보는 짤막한 글을 써봤습니다. 언제 완결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본 글은 프롤로그에 가까운 글이라 앞으로 한참 많이 남은 것 같습니다. 분량은 어느 정도 확보해 둔 상태에서 첫 글을 쓰는 거지만, 개인적으로도 쓰다가 한 3편 정도쯤에 연중하진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핵노답 그 자체죠 ㅉㅉㅉㅉ


개인적으론 6월 전까지 완결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는데, 연재를 완성하기 전에 요시자와 아키호 누님이 은퇴를 해버리면 레전드를 떠나보내게 되었다는 개인적인 상실감은 물론, 충격을 받아 연재를 중단하게 될 것 같습니다. (엄격) (진지) (쿰척)

그럼 모두 주말 잘 보내시길~ ^_^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