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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 파퀴아오의 어깨 부상 문제는 어떻게 되고 있는가?






문제는 경기 직후 링 인터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경기 직후 HBO 해설 맥스 켈러만이 마이크를 건네자 파퀴아오는 "내가 이겼다고 생각한다(I thought I won the fight)."라고 발언한 것이다. 켈러만은 선수를 앞에 뒀다 해도 자신의 생각을 매우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지난 주 블라드 클리츠코가 브라이언트 제닝스를 상대할 때에도 잽과 클린치로 일관하며 경기를 지루하게 만들자 "오른손에 문제라도 있었나?"라며 돌직구를 던지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이겼다는 파퀴아오의 주장에 대해 켈러만은 "정말 이겼다고 생각하나? 당신이 메이웨더를 제대로 밀어붙이지 못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나?" "마지막 2라운드에서 그렇게 한 것도 본인이 이기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가?"라고 반문했다. 파퀴아오는 쉽사리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켈러만의 질문에 분노한 파퀴아오의 팬들은 켈러만의 SNS에 몰려가서 그를 비난하는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그러나 켈러만의 태도는 확고했다. 그는 자신을 비난하는 팬들에게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맥스 켈러만 - "파퀴아오의 팬 여러분에게. 난 팀 브래들리에게도 파퀴아오 1차전에서 파퀴아오가 이긴 경기였다고 말했지만 그때 여러분은 내 말에 아무런 문제도 제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내 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파퀴아오 측의 석연찮은 행동은 기자회견에서도 계속되었다.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 입장한 파퀴아오 측은 가장 먼저 파퀴아오의 오른쪽 어깨에 부상이 있었다는 주장을 꺼내들었다. 경기 3~4주 전 파퀴아오는 훈련 도중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입었으며, 이 때문에 훈련을 며칠 동안 제대로 진행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차질을 빚었다는 것이다. 또한 파퀴아오 측은 경기 직전 NSAC(네바다 주 체육위원회) 측에 이 사실을 통보하고 MRI 촬영과 함께 진통제 사용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으며, 3라운드에서 결국 이 부상이 재발했다고 주장했다.


파퀴아오가 속한 탑랭크 프로모션의 수장 밥 애럼은 파퀴아오의 어깨 부상이 매우 심각했으며, 의사의 진단에 따르면 NBA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의 2014/15 시즌을 끝장냈던 어깨 회전근 파열 부상과 같은 종류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파퀴아오는 경기가 끝난지 이틀이 지난 후 어깨 수술을 받을 예정이며, 완치와 재활에 약 9~12개월이 걸릴 것이고 밝혔다.


그러나 NSAC 위원장 프란시스코 아길라르는 경기 당일까지도 파퀴아오의 어깨 부상 사실을 전혀 통보받지 못했으며, 경기 시작 2시간 전이 되자 그제서야 부상 사실을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또한 아길라르는 파퀴아오 측이 부상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어떠한 증거 자료도 제출하지 않았으며, 아무리 늦어도 경기 전날까지만 이 사실을 통보했다면 부상 상태를 검진하고 대처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프란시스코 아길라르 - "파퀴아오의 부상 소식을 처음 들은 것은 오후 6시 8분경 그가 라커룸에 도착했을 때였다. 파퀴아오의 부상을 입증하기 위한 어떠한 증거 자료도 받지 못했다. 만일 파퀴아오 측이 우리에게 최소한 경기 전날에 통보하기만 했어도 MRI를 촬영하고 여러 가지 대처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부상 사실을 경기 전날 계체 측정식에서만 밝혔어도 우리는 충분한 대화를 가진 후 다른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경기가 오후 8시에 시작하는데 오후 6시 반이 되어서야 자신이 다쳤다는 사실을 밝히면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상황은 점점 파퀴아오 측에 좋지 못하게 돌아가는 중이다. NSAC에서는 경기 전날 선수들에게 의무적으로 문진표를 작성하는 과정을 시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선수들은 자신의 부상이나 질병 여부에 대해 답변하거나 기록해야 하며, 경기 전 받은 의료 요법, 치료나 사용한 약물 등에 대해서도 기록해야 한다. 그런데 파퀴아오 측은 이 문진표에서 어깨 부상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파퀴아오가 경기 전날 작성한 NSAC 문진표)


파퀴아오는 문진표에 자신의 어깨 부상에 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다. 위의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해당 문진표에는 '당신의 어깨, 팔꿈치, 손 등의 부위에 검진이 필요한 부상이 있습니까?'라는 항목이 있다. 문진표를 대리 작성한 파퀴아오의 어드바이저 마이클 콘츠는 이 항목에 'No'라고 체크했다.


앤더슨 실바는 지난 UFC 183 직후 약물 검사에서 스테로이드 계열 물질이 적발된 후 자신이 부상당한 다리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물질이 양성 반응을 일으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바는 NSAC의 문진표에서 자신이 적발된 스테로이드 계열 물질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며 "당신은 지난 달에 특정한 보충제나 비타민제를 복용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단백질 분말'만을 언급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그의 이의 제기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파퀴아오 측의 주장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경기 종료 이틀 후, 파퀴아오 측은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파퀴아오 측이 이번에 화살을 돌린 것은 이번 경기의 약물 검사를 관장한 USADA(미국 반도핑 기구)였다. 파퀴아오 측의 성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파퀴아오는 훈련 도중 어깨에 부상을 입었고 권위있는 전문의의 진단과 처방을 받았으며 훈련과 함께 5월 2일 경기에 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2. 파퀴아오의 어드바이저 마이클 콘츠는 경기 당일 USADA 측에 부상 사실과 의사로부터 처방받은 치료 방식을 통보했으며 파퀴아오 측이 사용을 요청한 스테로이드 성분이 없는 소염진통제의 사용을 허가받았다. 파퀴아오의 어깨 처방과 진통제 사용은 경기 5일 전까지 USADA측의 허가를 받았다.


3. 경기 전 문진표 작성 당시 파퀴아오의 어드바이저 마이클 콘츠는 파퀴아오가 사용하는 진통제의 목록을 적었다(위의 문진표에 나와 있음). 그런데 경기 당일 NSAC 측에 파퀴아오의 어깨 부상 사실을 통보하고 진통제 사용을 요청했지만 NSAC는 그 전까지 파퀴아오의 어깨 부상 사실을 통보받지 못했기 때문에 진통제 사용이 불가하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USADA 측에 진통제 사용 허가를 요청한 파퀴아오 측의 행동은 매우 납득하기 어려운 대처 방식이다. USADA는 약물 검사 진행을 관할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선수 측과 주 체육위원회 측에 통보하는 역할만을 담당하는 독립된 기구일 뿐이다. 만약 이들이 경기 당일에도 진통제 사용을 허가받고 싶었으면 경기의 진행과 규정, 징계 문제를 관할하는 NSAC에 이를 사전에 통보하는 것이 옳았다. NSAC가 아닌 USADA 측에만 이 문제를 논의하려 든 파퀴아오 측의 대처 방식은 과연 그들이 각 기구와 단체의 관할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는지조차 의심하게 만들 정도다.


USADA 측에서도 NSAC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은 어떠한 문서, 진단서, MRI 사진 등의 증거를 받지 못했으며, 자신들의 관할은 약물 검사에 한정되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트래비스 태거트(USADA 의장) - "우리는 어떠한 의학적 정보나 MRI, 서류 등을 받은 적이 없다. 반도핑 문제와는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진짜 의문은 왜 파퀴아오 측이 경기 전 문진표에서 어깨 부상 여부를 묻는 질문에 'No'라고 체크했냐는 점이다. 그들이 규정을 위반하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건, 상대편에게 사전 정보를 주지 않으려는 의도였건 간에 말이다. 어쨌든 이 문제에 절충할 방안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파퀴아오 측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메이웨더 측은 불쾌한 태도를 감추지 않았다. 메이웨더 프로모션의 CEO 레너드 엘러비는 메이웨더 또한 양쪽 어깨와 양 손에 부상을 입은 상태로 경기에 임했으며, 메이웨더는 선수 생활에서 완벽한 몸 상태로 경기에 임한 적이 거의 없었으나 부상은 복싱에서 자주 발생하는 일이며 늘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레너드 엘러비 - "네바다 주 체육위원회는 업계 최고이며 항상 모든 일을 세심하고 조심스럽게 처리한다. 그들은 선수들의 건강 문제를 매우 신중하고 면밀하게 조사한다." 


"플로이드는 양쪽 어깨 근육에 염증이 생기고 양 손에 멍이 든 상태로 경기에 임했다. 애초에 플로이드가 완전히 멀쩡한 몸 상태로 경기에 임한 적이 지금까지 있었나 모르겠다."


"파퀴아오 측이 그렇게 말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플로이드는 언제나 부상을 달고 살았다. 그렇지만 이것은 복싱에서 항상 일어나는 일이고 견뎌내야 하는 일이다."


현재 파퀴아오는 위증 혐의로 인해 NSAC 측으로부터 징계를 받게 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NSAC 위원장 프란시스코 아길라르는 경기를 관할하는 기구에 선수의 모든 상태를 통보하는 것은 안전 문제를 위해 대단히 중요한 일이며, 현 상황을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할 생각이라고 밝힌 상태다.






이 글의 목적은 파퀴아오의 어깨 부상이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어쨌든 파퀴아오는 어깨 수술을 받는다고 밝혔고, 그의 말을 의심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파퀴아오의 부상 루머는 이미 이전부터 나오고 있었다. 경기 시작 약 1개월 전 파퀴아오는 며칠 동안 스파링을 쉰 적이 있었다. 이로 인해 몇몇 필리핀 언론에서는 파퀴아오의 부상 가능성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파퀴아오의 부상이 하루아침에 지어낸 거짓말이 아니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파퀴아오의 트레이너 프레디 로치는 부상 의혹이 기자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을 당시에도 파퀴아오는 체력 코치의 체육관에서 훈련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모습을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대답하며 기자들을 떼어냈다. 파퀴아오의 대변인 프레드 스턴버그 또한 파퀴아오가 부상당했다는 루머를 공식적으로 부인한 적이 있다. 파퀴아오 측은 경기 당일까지 결국 부상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감춘 셈이다.


파퀴아오가 부상 사실을 쉽게 밝히지 못하고 경기 당일까지 숨긴 행동은 그들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이해는 간다. 많은 사람들이 표현한 것처럼 이 경기는 무려 5~6년 동안 홍보한 것이나 다름없으며, 부상 때문에 연기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돈이 걸려 있다. 게다가 파퀴아오의 부상 때문에 경기가 연기되거나 취소될 경우 그 후폭풍을 감당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경기는 각 방송사와 프로모션들이 몇 년 동안 노력한 끝에 성사되었는데, 만약 취소되거나 연기될 경우 다시 성사될 수 있을 것이라 누가 장담했겠는가.


그러나 파퀴아오가 정말 부상이 덜 회복된 상태였다면 제대로 된 절차를 밟았어야 했다. 그런데 파퀴아오 측은 경기 전날 문진표에서는 부상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다가 경기가 1~2시간 앞으로 다가오자 그제서야 NSAC측에 어깨 부상 사실을 통보했지만 부상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어떠한 증거도 제출하지 못했고, 경기가 끝난 후에는 진통제 사용을 허가하지 않은 것에 대해 NSAC를 탓하고 있다. 게다가 진통제 사용을 허가받기 위해 NSAC가 아닌 약물 검사만을 관할하는 제 3자인 USADA 측에 뜬금없이 요청을 했다는 사실은 파퀴아오 측의 실무 능력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다. 파퀴아오 측이 정당한 절차를 밟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파퀴아오는 메이웨더의 이미지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두 이미지 덕분에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화끈하고 공격적인 파이터로서의 이미지, 그리고 겸손하고 긍정적인 이미지. 이 덕분에 파퀴아오는 메이웨더의 홈인 미국에서 경기를 치르면서도 야유 대신 환호를 받았고, 경기를 선과 악의 대결구도로 몰고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경기의 공이 울린 후 지금까지 파퀴아오는 저 두 가지 긍정적인 이미지 중 어느 쪽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링 위에서는 소극적인 모습으로 일관했으며, 경기가 끝난 후 보여주는 모습도 씁쓸한 뒷맛이 느껴지게 만들고 있다.


파퀴아오는 패배의 핑계를 대기 위해 어깨 부상 문제를 꺼내든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파퀴아오의 다음과 같은 발언을 보면 그의 주장을 좋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워보인다.


매니 파퀴아오 - "나는 통증 때문에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양손 모든 부위에 확신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부상을 당하게 되면 머리 속에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는 법이다."


"메이웨더가 내 팔을 잡아당기는 모습을 봤나? 내가 팔을 다쳤다는 사실을 알고 그랬다는 것이 분명하다. 마치 바늘로 내 뼈를 찌르는 듯한 통증이었다. 나는 진통제가 간절히 필요했다. 강한 잽이나 훅을 치려고 할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파퀴아오 측의 이러한 태도 때문에 복싱계에서 파퀴아오의 긍정적인 이미지는 점점 실추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파퀴아오의 소극적인 경기 내용에 대해 불만을 표하던 많은 미디어는 경기가 다 끝난 이후에 갑작스레 부상과 진통제 문제를 크게 만드는 파퀴아오 측의 행동을 정치적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테디 아틀라스는 파퀴아오의 부상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견을 밝혔다.


테디 아틀라스"이 업계에 나처럼 오래 있다 보면 가끔 시니컬해질 필요도 있는 법이지. 복싱은 정치판과 비슷하거든. 모든 말을 전부 곧이곧대로 믿어선 안 돼. 링 위에 올라선다면 누구나 제대로 준비를 갖출 책임이 있어. 파퀴아오처럼 이번 경기에서 1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선수라면 더더욱 그래야 마땅하지. 부상을 당한 채 경기하는 건 늘상 있는 일이야. 복싱의 일부라구. 복서들은 그런 것들을 견뎌내면서 싸워야 해. 가끔씩 100%가 아닌 상태로 경기에 임할 때도 있겠지. 메이웨더도 손에 부상을 입은 채 싸웠을지도 몰라. 하지만 만약 파퀴아오가 이겼다면 누가 그런 말을 듣고 싶겠어?" 


테디 아틀라스의 말처럼, 복싱 선수에게 있어서 부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부상을 달고 싸우는 것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경기 전까지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도 선수의 능력이며, 몸 상태가 100%가 아니더라도 위기를 관리하면서 경기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고 오는 것 또한 엄연한 선수의 실력이다. 비록 파퀴아오가 부상을 당했다고 해도 그것 또한 복싱의 일부이며 부상을 달고 싸웠다가 패한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파퀴아오의 부상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다가 경기가 끝난 후 그제서야 문제를 크게 만드는 파퀴아오 측의 태도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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