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플로이드 메이웨더 vs. 매니 파퀴아오: 선수 분석 & 경기 예측









1. 메이웨더는 파퀴아오를 어떻게 공략할 수 있을까? - 파퀴아오를 고전하게 만든 선수들


파퀴아오 vs. 마르케스 3차전이 치러질 당시, 파퀴아오는 이미 웰터 라인에서 수 년 동안 활동한 반면 마르케스는 메이웨더와 치른 144파운드 계약체중 경기를 제외하면 근 5년 동안 수퍼페더급과 라이트급에서만 활동했고, 주니어웰터급에서 막 한 경기를 치를 무렵이었다. 이 때문에 대다수의 팬과 언론들은 1, 2차전의 접전에도 불구하고 3차전에서 파퀴아오의 압도적인 우세를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경기 내용은 1, 2차전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접전이었고, 결과는 파퀴아오의 매저리티 판정승이었지만 오히려 마르케스가 승리했다고 보는 여론도 적지 않을 정도였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가능했을까?


증량을 하면 몸이 둔해지는 데 반해 상위 체급 선수들에게는 체격의 열세를 안고 싸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었고, 체급의 벽이 넘기 힘든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파퀴아오는 달랐다. 파퀴아오는 자신보다 큰 상대를 스피드와 스태미너에서 압도하고 다양한 앵글에서 엄청난 숫자의 펀치를 적중시키는 식으로 제압했다. 이는 파퀴아오가 체격과 힘은 늘리되 스피드는 상대적인 우위를 잃지 않는 식으로 증량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파퀴아오는 불가능해보이는 체급의 벽을 깨뜨리며 자신보다 훨씬 큰 선수들을 쓰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허나 후안 마누엘 마르케스에게는 이와 같은 방식이 쉽게 통하지 않았다.


마르케스는 파퀴아오와 마찬가지로 아래 체급인 페더급에서 월장한 선수였고, 페더급과 수퍼페더급에서 치른 파퀴아오 1, 2차전에서 스피드, 풋워크 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 게다가 마르케스는 증량 실패로 인해 무력하게 패배한 메이웨더전과는 달리 2년 동안 라이트급과 주니어웰터급 경기를 거치며 신중하게 증량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파퀴아오는 마르케스에게 상위 체급의 이점을 얻기 어려웠고, 스피드의 상대적인 우위를 점하는 것도 어려웠다. 파퀴아오가 상위 체급 선수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전략의 상당수가 마르케스에게는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파퀴아오와 마르케스의 활동 체급만을 보고 파퀴아오의 압도적 우세를 예측하던 사람들은 결국 복싱이란 스타일이 시합을 결정짓는(Style makes fights) 스포츠라는 점을 간과한 셈이다.


마르케스는 파퀴아오 3차전을 앞두고 피지컬에서 거의 동등한 위치를 점하는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마르케스는 경기 당일 파퀴아오의 어떤 약점을 공략해서 경기를 접전으로 끌고 갈 수 있었던 것일까?


파퀴아오와 마르케스는 1, 2차전에서 서로에게 호되게 경험을 바탕으로 경기 초반에는 서로의 거리 안에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 방향을 택한다. 마르케스는 백스텝을 통해 파퀴아오의 리치가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는 거리를 유지하며 파퀴아오의 앞손을 무력화시켰고, 끊임없는 페이크 동작으로 파퀴아오를 교란하고 리듬을 흐트러뜨렸다.





마르케스의 거리 유지, 상대의 앞손 무력화, 그리고 카운터.






파퀴아오는 마르케스가 들어오는 동작을 취할 때마다 민감하게 반응했고, 팔을 무리하게 뻗거나 가드가 열리는 등 빈틈을 노출했다. 파퀴아오는 대부분 이러한 장면에서 정타를 허용했다.



마르케스가 파퀴아오를 상대로 선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마르케스가 파퀴아오의 거리, 타이밍, 수비적 약점을 파악하고 이를 공략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특히 앞손 펀치를 내거나 뒷손 스트레이트를 뻗는 중 안면이 크게 열리는 것은 파퀴아오의 고질적인 약점 중 하나인데, 마르케스는 이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장기인 오른손 카운터를 적중시킨다.




오른손으로 리드 펀치를 내거나 뒷손을 내기 위한 셋업 펀치를 낼 때 이렇게 가드가 내려가며 안면이 열린다.



파퀴아오는 마르케스 2차전에서도 비슷한 장면에서 큰 카운터를 허용했고, 3차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결국 4차전에서는 이 카운터로 인해 KO패를 당하고 만다.




파퀴아오 vs. 마르케스 2차전에서 마르케스에게 카운터펀치를 허용하는 파퀴아오.





파퀴아오 vs. 마르케스 3차전 5라운드 영상. 영상 3분 11초경 마르케스가 파퀴아오의 가드가 내려가도록 유도한 후 라이트 크로스를 시도. 영상 3분 18초경 2차전에서 나온 것과 거의 동일한 상황에서 카운터펀치를 허용한다.




파퀴아오 vs. 마르케스 4차전 5라운드에서도 파퀴아오는 마르케스에게 똑같은 상황에서 안면을 열어주고 카운터를 허용한다.





결국 6라운드에서 파퀴아오는 이 카운터펀치로 인해 KO.



파퀴아오는 마르케스 4차전의 KO패 이후 교훈을 얻었으며 다시는 같은 상황에서 급하게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케스 이후의 몇몇 선수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카운터를 적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티모시 브래들리 2차전, 크리스 알지에리전에서 이 두 선수는 파퀴아오에게 모두 같은 카운터를 적중시켰는데, 만약 파퀴아오가 조금만 더 성급하게 들어왔거나 이 두 선수들의 펀치력이 좀 더 강했다면(브래들리와 알지에리 두 선수 모두 물펀치로 유명하다;) 다운까지 당할 수도 있는 위험한 장면이었다.





티모시 브래들리 2차전에서 마르케스에게 당한 카운터와 비슷한 식으로 안면을 노출하는 파퀴아오.





크리스 알지에리에게 카운터를 허용하는 파퀴아오. 알지에리 정도의 선수조차 파퀴아오의 뒷손이 내려가는 빈틈을 파악하고 카운터를 적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메이웨더는 같은 방식으로 파퀴아오에게 어려움을 겪게 할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이 높다. 앞에서 마르케스가 파퀴아오의 빈틈을 유도한 수단 중 하나가 거리 조절이라고 언급했는데, 이러한 거리 조절이야말로 메이웨더의 최대 장기 중 하나다. 메이웨더는 앞손과 머리의 위치, 상체 움직임을 미세하게 조절해서 상대방이 자신과 메이웨더의 거리를 착각하게 만드는 데 대단히 능숙하다. 상대 선수는 메이웨더가 자신의 리치가 닿는 범위 안에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리드 핸드를 내지만, 메이웨더는 실제로 몸의 중심을 상대가 느끼는 것보다 뒷쪽에 놓고 있기 때문에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피하고 카운터를 적중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상대방이 무방비하게 메이웨더의 거리 안에 들어오면 그때부터 메이웨더는 잽과 카운터, 훅을 가리지 않으며 상대를 농락하기 시작한다.




메이웨더의 거리 조절 속임수와 풀 카운터(Pull Counter). 상체, 머리, 앞손의 위치를 미세하게 조절해서 마이다나의 잽을 유도하고 풀 카운터를 적중. 에리슬란디 라라와 기예르모 리곤도 같은 선수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상대의 거리 감각을 흐트러뜨리는 데 능하다.


메이웨더의 앞손 활용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것도 파퀴아오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파퀴아오는 프레디 로치를 만난 후 라이트 훅을 레프트 스트레이트와 맞먹는 KO 펀치로 다듬었고 이전에는 뒷손을 내기 위한 셋업 용도로만 쓰던 잽을 가다듬으면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르케스가 거리 조절과 패링을 통해 파퀴아오의 잽을 차단하고 앞손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자 파퀴아오의 앞손은 큰 위력을 발휘하기 어려웠고, 앞손 활용도의 차이는 파퀴아오가 마르케스를 상대로 완전한 우위를 점하지 못했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양 선수가 이전 경기들에서 보여준 모습을 고려해보면, 잽 싸움에서는 메이웨더가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양 선수의 거리 싸움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


만일 파퀴아오가 마르케스를 상대로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메이웨더를 상대할 때에도 거리 밖에서 무리하게 펀치를 시도하면 위험할 공산이 상당히 크다. 메이웨더는 거리 조절 능력에서 마르케스보다 한 수 위의 능력을 지녔고, 카운터펀처와 아웃복서로서도 모두 수준급의 기술을 지닌 선수다. 게다가 파퀴아오의 수비적 문제점은 마르케스 2,3,4차전과 다른 선수들과의 경기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파퀴아오 캠프가 수비적인 약점을 보완하지 않거나 메이웨더의 거리를 파고들 확실한 방법을 준비하지 못한다면 경기를 가져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P.S.

메이웨더 또한 파퀴아오와 비슷한 방식으로 웰터급 이상의 체급 경기에 임하는 선수다. 메이웨더 또한 웰터급보다 훨씬 낮은 체급인 수퍼페더급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고, 웰터급이나 수퍼웰터급 경기에서 웰터급 한계체중에도 못 미치는 145파운드 가량의 체중으로 경기에 임해서 당일 체중이 160파운드를 넘는 델 라 호야, 카넬로, 마이다나 등의 선수들을 제압했다. 이러한 점에서 두 선수는 비슷한 전략으로 웰터급 경기에 임한다고 할 수 있고, 동등한 조건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메이웨더는 파퀴아오에 비해 신장과 리치, 체격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 말대로라면 파퀴아오가 이길 가능성은 아예 제로에 가까운 것이 아니냐고? 글쎄. 메가파이트는 말 그대로 당대 최고의 선수들이 맞붙는 시합이고, 한 끝 차이가 승부를 가른다. 이 때문에 다수의 예측을 뒤엎는 결과도 얼마든지 나왔다.


다음은 복싱계에서 선수들이 갖는 위상, 사회적 주목도, 오가는 돈의 규모 등을 모두 따져봤을 때 소위 '메가파이트'로 분류할 만한 경기들의 목록이다. (개인적인 판단으로 선정한 것이기 때문에 이견이나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음)



잭 뎀시 vs. 진 터니


조 루이스 vs. 막스 슈멜링


조 프레이저 vs. 무하마드 알리 1


조지 포먼 vs. 무하마드 알리


마블러스 마빈 해글러 vs. 슈거 레이 레너드


이밴더 홀리필드 vs. 마이크 타이슨 1


레녹스 루이스 vs. 마이크 타이슨


오스카 델 라 호야 vs. 플로이드 메이웨더


플로이드 메이웨더 vs. 사울 '카넬로' 알바레스



상당수의 경기에서 배당률이 낮은 언더독이 승리를 거뒀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다수의 예상을 뛰어넘는 경기 내용이 나온 경우가 여럿 있다. 이러한 결과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록 현재 대다수가 메이웨더의 승리를 예측하는 것이 현실이고, 파퀴아오가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파퀴아오의 승리 가능성 자체를 비관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다. 이만큼 수준 높은 시합에서는 아주 작은 차이도 업셋을 일으킬 수 있다.


그렇다면 파퀴아오는 메이웨더의 어떤 점을 노려볼 수 있을까?






2. 파퀴아오는 메이웨더를 어떻게 공략할 수 있을까? - 메이웨더를 고전하게 만든 선수들



플로이드 메이웨더는 완벽에 가까운 복서지만, 이 세상에 완전무결한 것은 없다. 메이웨더는 기본적으로 경기 초반을 셋업 라운드로 정하고 상대방을 어느 정도 파악한 후 링 주도권을 잡아나가는 식으로 경기를 운영한다. 그런데 메이웨더는 경기 초반에 큰 정타를 허용하고 데미지를 입은 적이 몇 번 있다.





데미지를 입은 상황에서도 반사적으로 숄더 롤 동작을 취하다가 계속해서 타격을 허용한 허용한 디마커스 콜리전.





메이웨더의 커리어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은 경기로 꼽히는 호세 루이스 카스티요 1차전.




메이웨더가 커리어 사상 유일하게 제대로 된 의미의 다운을 당한(심판이 다운으로 판정하지는 않았지만) 경기인 잽 주다전.




메이웨더 vs. 모슬리 2라운드에서 메이웨더는 모슬리에게 라이트 훅 정타를 맞으며 그로기 상태에 몰린 적이 있다. 모슬리가 셋업한 바디 잽에 가드를 내렸다가 안면에 정타를 허용한 것.






메이웨더 vs. 마이다나 1차전에서 메이웨더는 마이다나의 접근을 너무 쉽게 허용했다가 근접전에서 큰 타격을 입었고 이후 경기를 계속 어렵게 풀어나가야만 했다.





메이웨더 vs. 마이다나 2차전 3라운드에서 나온 장면. 마이다나는 메이웨더의 풀 카운터를 예측하고 오히려 역으로 카운터를 적중시켜서 메이웨더에게 큰 데미지를 입히는 데 성공했다. 아마 메이웨더의 풀 카운터를 가장 재치있게 받아친 선수가 아닐까.



문제는 메이웨더가 경기 초반 큰 데미지를 입은 적이 여러 번 있다 해도 마지막에 경기 전체를 가져간 것은 결국 메이웨더라는 점이다. 매 훈련마다 꾸준히 목 근육을 단련하는 메이웨더는 잘 부각되지 않는 강한 맷집을 지녔다(애초에 맞은 적이 별로 없으니 부각될 기회가 별로 없었지만). 메이웨더는 평범한 선수라면 그 자리에서 실신할 수도 있는 모슬리나 마이다나의 펀치를 맞고도 위기를 넘길 수 있었고, 마침내 상대방을 파악한 후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앞에서 나온 장면들을 예시로 들어서 설명하면, 위의 메이웨더 vs. 모슬리에서 메이웨더는 모슬리의 바디 잽 셋업에 속아 가드를 내렸다가 안면에 라이트 훅을 정통으로 맞고 그로기 상태에 몰렸다. 그러나 이후 이 방식은 통하지 않았다. 메이웨더는 이후 모슬리가 바디 잽을 뻗으면 가드를 내리는 똑같은 실수를 하는 대신 훅으로 카운터를 꽂거나 백스텝으로 물러나며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했고, 나중에는 오히려 풀 카운터로 반격하고 더킹으로 회피하는 명장면까지 선보이면서 자신이 모슬리를 완벽하게 파악했음을 증명했다.






모슬리에게 데미지를 입은지 불과 1~2라운드만에 바디 잽 셋업 대응책을 찾아낸 메이웨더.






모슬리의 바디 잽과 훅에 완벽하게 적응하고 오히려 반격하는 메이웨더.



메이웨더 vs. 주다도 마찬가지였다. 메이웨더 vs. 주다는 주다가 사우스포라는 점 때문에 메이웨더 vs. 파퀴아오의 경기 양상을 예측할 때 많은 사람들이 레퍼런스로 꺼내드는 경기다. 주다는 메이웨더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 훈련해 왔고, 메이웨더의 스타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주다는 스피드에서 동시대 최고로 평가받는 선수 중 하나였다. 이러한 이점 덕분에 주다는 자신의 장점을 잘 살려서 메이웨더를 공략했고, 초반 라운드에서 아주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메이웨더를 고전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메이웨더는 자신을 잘 아는 주다가 공략법을 들고 나왔어도 이를 또다시 파해하는데 성공한다. 가령 주다는 경기 초반 잽 연타와 함께 파고들면서 메이웨더의 앞발 바깥쪽을 점유하고 뒷손을 꽂을 공간을 만드는 식의 작전을 들고 나왔는데, 메이웨더는 이에 대해 주다의 잽 타이밍에 맞춰 레프트 훅으로 카운터를 맞추는 식으로 대응했고, 주다의 펀치가 안면에 꽂히기 시작하자 하이 가드를 굳힌 후 거리를 좁혀서 압박하는 식으로 대응한다. 정타와 바디 샷을 꾸준히 허용하며 스태미너를 잃은 주다는 갈수록 메이웨더의 경기 운영에 말려들자 결국 이성을 잃고 링 위를 난장판으로 만들며 경기를 사실상 포기해버린다.





메이웨더는 주다의 잽 연타 후 침투를 하이 가드로 막아내거나 레프트 훅 카운터를 적중시키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메이웨더의 가장 무서운 점이 바로 이것이다. 그는 근접전, 중간 거리 싸움, 원거리 싸움에서 모두 능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스타일을 수준급으로 소화할 수 있는 기술적 수준을 지녔고, 상대가 초반 라운드에서 아무리 선전한다 해도 언제나 적응하며 대처 방법을 찾아내서 결국 마지막에는 승리를 챙겼다. 이것이 바로 메이웨더가 18년간 프로 47연승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King of adjustment라는 칭호가 괜히 붙게 된 것이 아니다.


만일 상대가 비슷한 방식으로만 메이웨더를 공략하려 한다면 어지간해서는 메이웨더를 이길 수 없다. 메이웨더가 대응책을 찾아낼 것을 전제하고 그에 대비한 제 2, 제 3의 플랜을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 실제로 최근 파퀴아오와 프레디 로치는 인터뷰에서 상황 변화를 염두에 둔 제 2, 3의 플랜을 준비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과연 이들이 준비한 플랜이 어떤 것일지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개인적으로는 파퀴아오가 초반에 가능한 한 많은 데미지를 입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메이웨더가 아무리 강한 맷집을 지녔다고 해도 큰 정타를 맞고 곧바로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이다나에게 역카운터를 허용한 위의 장면에서 메이웨더는 곧바로 3라운드 종료를 알리는 공이 울린 덕분에 위기를 넘겼지만, 4라운드 초반까지도 완벽하게 회복하지 못하고 로프에 몰리는 모습을 보였다.





3라운드 막판에 입은 데미지에서 완전하게 회복하지 못하고 로프에 몰리는 메이웨더.



파퀴아오는 메이웨더가 자신의 거리와 타이밍을 파악하기 전에 최대한 많은 데미지를 입힐 필요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파퀴아오는 경기가 중반을 넘어선 이후에도 메이웨더가 파퀴아오의 거리와 타이밍에 적응하고 마음대로 경기를 풀어나가지 못하도록 꾸준하게 압박해야 한다. 사실상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어려운 임무를 실행해야만 메이웨더를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뜻이다.


메이웨더를 잡기 위해서는 거리를 내주지 않기 위한 쉴새없는 압박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파퀴아오의 캠프 또한 분명 이를 전제로 나름의 플랜을 수립했을 것이다.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파퀴아오가 상대방을 압박하고 링을 커팅할 때 지나치게 직선적으로 전진하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는 것인데, 이 때문에 상대 선수들은 파퀴아오가 들어오는 타이밍에 맞춰서 카운터를 걸거나, 파퀴아오의 앞발 바깥쪽 방향으로 서클링하는 식으로 압박을 피해갈 수 있었다. 물론 파퀴아오가 거리와 타이밍을 잡은 다음부터는 처참하게 당하긴 했지만, 크리스 알지에리조차 경기 초반까지는 이런 방식으로 파퀴아오의 전진을 피해갈 수 있을 정도였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메이웨더의 거리 조절은 매우 절묘해서 상대 선수들이 거리 감각을 제대로 못 잡기 십상이다. 게다가 메이웨더는 카운터 타이밍을 노리는 능력과 사이드 스텝 모두 훌륭한 수준이다. 파퀴아오가 성공적으로 메이웨더를 붙잡아두기 위해서는 메이웨더의 거리 조절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고 좀 더 거리를 좁히고 레터럴 무브먼트를 활용하며 효율적으로 차단하고 압박할 필요가 있다.





메이웨더 vs. 마이다나 1차전에서 메이웨더는 잽과 높낮이 변화를 섞어 가며 압박하는 마이다나를 효과적으로 차단하거나 피해가지 못했고 로프에 몰려서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다. 만약 메이웨더가 이번 경기에서도 이와 같은 장면처럼 발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면 파퀴아오가 무언가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해볼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말한 내용들이 모두 어디까지나 말로는 그럴듯하지만 실제로 이를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수행했던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메이웨더가 프로에 데뷔한 후 18년 동안 한 번도. 







+ 메이웨더는 과연 사우스포에게 약한가?


많은 사람들은 이번 경기에서 파퀴아오의 우위를 점치는 이유로 파퀴아오가 사우스포라는 점을 꼽는다. 메이웨더의 필리 셸(Philly Shell) 스탠스는 앞손을 내린 스탠스이기 때문에 사우스포의 앞손에 노출되기 쉽고, 특히 필리 셸의 핵심 동작인 숄더 롤은 앞쪽 어깨로 상대의 펀치를 흘리는 동작인데 이것이 왼손 공격에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 필리 셸은 시야를 확보하기 좋다는 장점이 있으며, 상대의 거리를 파악하고 다음 동작을 예측할 수 있다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수비 시스템이지만, 안면을 노출한다는 점은 상당한 리스크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메이웨더는 사우스포인 잽 주다나 디마커스 콜리 등을 상대할 때에도 습관적으로 필리 셸 스탠스를 유지하고 숄더 롤 동작을 취하다가 안면에 정타를 허용한 적이 있다. 위의 장면에서 메이웨더는 하이 가드를 굳히고 있다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필리 셸 스탠스를 취했고 주다의 레프트 스트레이트에 정타를 허용했다.




메이웨더와 마찬가지로 필리 셸 스탠스를 사용하는 애드리언 브로너가 마이다나에게 레프트 훅 정타를 맞고 다운당하는 장면. 마이다나가 펀치를 뻗기 직전 몸을 낮췄기 때문에 브로너는 이를 바디 샷의 준비동작으로 예측하고 가드를 내렸다가 허를 찔리고 말았다. 마이다나는 오소독스이긴 하지만, 안면을 노출하는 필리 셸의 리스크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파퀴아오가 메이웨더에게 스타일 상의 우위를 점하리라고 예상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메이웨더는 필리 셸 스탠스만을 고집하는 선수가 아니다. 가령 사우스포인 주다를 상대할 때에는 하이 가드로 안면을 보호하고 접근해서 바디 샷을 날리는 식으로 대응했고, 마찬가지로 사우스포인 오티즈를 상대할 때에는 정반대로 상대방의 거리와 타이밍을 파악하자 필리 셸 스탠스로 경기에 임했다. 하지만 오소독스인 모슬리를 상대할 때에는 하이 가드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하이 가드 위주의 경기 운영으로 근접전 상황을 만들고 주다를 압박하는 메이웨더. 메이웨더를 필리 셸 스탠스로만 설명하는 것은 매우 단편적인 시각이다. 실제로 메이웨더의 경기를 보면 그는 여러 상황에서 필리 셸과 하이 가드를 혼용한다.


메이웨더의 스타일은 필리 셸 스탠스와 숄더 롤 동작만으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도와 비율의 차이만 있을 뿐, 메이웨더는 사우스포를 상대할 때건 오소독스를 상대할 때건 상황과 필요에 따라 필리 셸 스탠스와 일반적인 스탠스를 모두 적절하게 섞어가며 대처했다. 메이웨더가 필리 셸 스탠스를 취하고 있는 상황에서 파퀴아오가 정타를 꽂을 수 있는 가능성은 분명 존재하지만, 메이웨더는 바보가 아니고 경기 내내 계속해서 필리 셸을 고집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실 파퀴아오가 사우스포라는 점을 주목해야 하는 정말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고 보는데, 이는 메이웨더가 사우스포를 상대할 때 일반적인 통념과는 다른 방식을 택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오소독스가 사우스포를 상대할 때에는 사우스포의 앞발 바깥 방향으로 서클링을 하는 것이 상식인데, 사우스포의 앞손을 무력화시키고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꽂을 각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이웨더는 이런 상식과는 정반대로 사우스포의 앞발 안쪽 방향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종종 보여준다.






사우스포인 빅터 오티즈를 상대로 시계 방향이 아니라 반대 방향으로 이동해서 상대방의 정면에 서는 메이웨더. 마찬가지로 사우스포인 로버트 게레로를 상대할 때에도 메이웨더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서클링하는 장면을 여러 번 선보였다.


아미르 칸이나 로이 존스 주니어 등의 선수들도 사우스포를 상대로 간혹 이와 같은 방식을 취한 적이 있다. 이러한 동작은 왼손 잽과 뒷손을 좀 더 쉽게 꽂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사우스포의 왼손에 정면으로 노출된다는 리스크가 있는데, 상대의 거리와 타이밍을 파악한 상태라면 앵글을 허용한다 해도 자신의 디펜스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메이웨더의 판단력과 자신감이 바탕이 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동작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파퀴아오의 최대 장기는 빠르고 쉴새없는 풋워크를 활용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콤비네이션과 펀치 다발을 쏟아내는 것이다. 만일 메이웨더가 파퀴아오를 상대로도 이렇게 정면으로 들어온다면, 파퀴아오가 자신의 장기인 빠른 풋워크와 페인팅을 활용하여 얼마나 잘 파고들어서 정타를 꽂을 수 있느냐가 시합의 변수가 될 수도 있다. 과연 파퀴아오는 메이웨더의 거리와 디펜스 시스템을 뚫고 자신의 장기인 펀치 다발을 꽂아넣을 수 있을까.








낙다운 파워가 나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보이는 앵글에서 상대방을 다운시키는 파퀴아오. 과연 메이웨더를 상대로도 이런 장면이 나올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파퀴아오와 같은 '특별한' 사우스포라면 메이웨더를 상대로 이점을 가질 가능성을 기대해볼 수 있지만, 사우스포라는 사실만으로 메이웨더에게 절대적인 우위를 갖는다고 하기는 어렵다. 파퀴아오가 자신의 스타일과 이점을 얼마나 잘 살리는가의 여부가 사우스포라는 사실 그 자체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이다.






+ 파퀴아오는 카스티요나 마이다나의 방식대로 메이웨더를 어려움에 빠뜨릴 수 있을까?


메이웨더가 마르케스의 방식대로 파퀴아오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면 파퀴아오는 카스티요나 마이다나의 방식대로 메이웨더를 어렵게 만들수도 있지 않냐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후자는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한다.


우선 체격 문제가 있는데, 카스티요와 마이다나가 클린치 싸움에서 메이웨더를 어렵게 만든 요인 중 하나는 중량 면에서 우위를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카스티요는 1차전의 경기 당일 체중이 메이웨더보다 8파운드 가량 더 나갔으며, 마이다나는 1, 2차전에서 메이웨더보다 17파운드 가량 더 무거운 상태로 경기에 임했다. 반면 파퀴아오는 메이웨더와 마찬가지로 웰터급 한계체중과 경기 당일 체중이 큰 차이가 나지 않으며, 체격적으로는 오히려 메이웨더가 우세하다.


무엇보다도 인사이트 파이트에 더 능숙한 쪽은 파퀴아오가 아닌 메이웨더. 메이웨더는 클린치 싸움의 전문가인 해튼을 상대로도 인사이드에서 밀리지 않았으며, 마이다나 1차전에서는 인사이드에서 고전했지만 2차전에서는 자신보다 훨씬 체중이 많이 나가는 마이다나를 상대로도 크게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파퀴아오는 상대가 경기를 근접전으로 이끌고 가면 같이 맞서기보다는 상대를 밀어내거나 뒤로 빠져서 중간거리 상황을 만드는 쪽을 선호한다. 게다가 경기의 주심 또한 클린치 상황에서 단호하기로 유명한 케니 베일리스. 이런 상황에서프레디 로치가 파퀴아오에게 익숙하지도 않은 근접전과 클린치 싸움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경기를 인사이드 파이트로 끌고 가길 원하는 쪽은 메이웨더일 것이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메이웨더는 근접전과 클린치 싸움에서 파퀴아오보다 한 수 위다. 위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메이웨더는 잽 주다를 상대할 때 하이 가드로 안면을 보호하고 접근하여 토투토 상황을 만든 후 바디 샷을 꽂아넣는 식으로 경기를 가져왔다. 반면 파퀴아오는 조슈아 클로티가 비슷한 작전을 들고 나왔을 때 하이 가드를 굳히고 있다가 어퍼컷과 바디 샷을 허용했으며, 브래들리를 상대할 때에도 클린치나 근접전 상황에서 바디 샷을 허용했다. 메이웨더는 아마도 이번 경기에서 비슷한 방식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3. 정리 - 두 선수에게 필요한 것은?



매니 파퀴아오


1. 끊임없는 압박과 풋워크로 메이웨더가 마음대로 거리를 조절할 틈을 주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한 중간 거리로 경기를 유도해야 한다.


2. 단순히 전진만 한다면 메이웨더의 거리 조절을 뚫기 어렵고, 레터럴 무브먼트를 통해 펀치를 꽂을 각을 만들어야 한다.


3. 경기 초반 셋업 라운드에서 메이웨더에게 최대한 큰 데미지를 입힌 후에도 체력을 유지하면서 가능한 한 많은 포인트를 따내야 한다.


4. 메이웨더가 파퀴아오의 게임플랜에 적응할 것을 전제하고 그에 대비한 제 2, 3의 플랜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플로이드 메이웨더


1. 자신의 장기인 거리 조절 속임수와 앞손 활용을 통해 거리를 유지한다.


2. 지속적인 페이크로 리듬을 깨며 파퀴아오를 교란한다.


3. 파퀴아오가 고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수비적인 빈틈을 노출할 때마다 정타를 적중시킨다.


4. 토투토 상황에서 바디 샷을 통해 꾸준히 데미지를 입힌다.






4. 경기의 불안요소 또는 변수가 될 만한 요인은?



매니 파퀴아오 - 다리 경련


풋워크를 쉴새없이 활용하는 선수들에게 다리 부상은 최대의 적이다. 파퀴아오는 경기 중 다리 경련이 발생하는 증상을 고질적으로 겪어 왔다. 멀게는 마르케스 3차전에서 이런 증상이 나타났고, 브래들리 2차전과 알지에리전에서도 비슷한 증상으로 인해 풋워크에 이상이 생긴 것이 눈에 띌 정도였다. 특히 브래들리 2차전에서는 마지막 라운드를 앞두고 세컨드에게 다리 마사지를 부탁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지난 수 년 동안 매 경기에서 거의 한 번 꼴로 다리 경련이 문제가 된 셈이다.


무엇보다도 파퀴아오는 경기를 한 달 가량 앞둔 시점에서 다리 경련 문제가 또다시 발생하여 아침 로드워크 훈련까지 거른 적이 있다. 파퀴아오 캠프 측에서는 원인을 파악했으며 새로운 연고를 사용해서 문제를 해결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지난 수 년 동안 고질적으로 겪어 왔고 훈련 캠프 진행 중에도 발생한 문제가 이번 경기에서도 다시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파퀴아오가 메이웨더를 잡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압박하고 풋워크를 통해 다양한 앵글에서 펀치를 퍼붓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만일 이번 경기에서도 경기 도중 파퀴아오에게 다리 경련이 발생하면 이러한 플랜을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고, 파퀴아오에게 있어서 치명타가 될 것이다.



플로이드 메이웨더 - 손 부상


메이웨더는 경기 중 손 부상을 종종 겪어 왔다. 이 때문에 메이웨더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핸드랩을 감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메이웨더의 컷맨 라파엘 가르시아의 말에 따르면 메이웨더의 핸드랩 작업에 한 손당 25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경기 협상에서 글러브를 선정하는 것에도 까다로운 편이다.


메이웨더는 이전에 손 부상이 발생한 경기들에서 잘 대처하며 위기를 벗어났다. 발도미르전에서는 경기 후 발도미르가 메이웨더가 다쳤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밝힐 정도로 한 손만으로 압도적인 경기를 펼쳤으며, 잽 주다를 상대로도 오른손이 부상당한 상태에서 승리를 챙겼다. 심지어 2001년 카를로스 페르난데스를 상대로는 두 손이 모두 부상당한 상태에서도 승리를 챙기는 놀라운 결과를 얻어 냈다. 비교적 최근인 2013년 로버트 게레로전에서도 손 부상이 발생하여 수술을 고려한다고 밝힐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 상대는 이전의 상대들과는 격이 다르다. 만일 이번 경기에서도 메이웨더에게 경기 중 손 부상이 발생한다면, 과연 매니 파퀴아오를 한 손 또는 부상당한 두 손으로 상대해서 제압하는 것이 가능할까?



두 선수의 노쇠화


이번 메가파이트는 정말 말 그대로 최후의 최후에 성사된 경기다. 1977년생으로 현재 만 38세인 메이웨더는 쇼타임과 체결한 독점 계약이 끝나는 올해 9월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한다고 밝혔으며, 1978년생으로 만 36세인 파퀴아오 또한 이미 이전에 2016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예정이며, 이번 경기 결과에 따라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밝힌 상태다. 두 선수 모두 언제 신체능력이 떨어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파퀴아오는 본인도 인정했던 것처럼 월드와이드 스타에 오른 이후 정계 활동 및 탈세 등의 경기 외적 사건, 방탕한 사생활로 인해 복싱에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파퀴아오의 경기력과 신체능력이 하락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며, 결국 2012년 브래들리 1차전과 마르케스 4차전으로 인해 하락세의 바닥을 치고 말았다. 지금의 파퀴아오는 여전히 웰터급에서 압도적인 파워와 스피드를 지니고 있지만 예전만은 못하며, 특히 스태미너 면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파퀴아오에 비하면 하락세를 보인 시점이 늦긴 하지만, 메이웨더 또한 최근 경기에서의 폼이 그리 좋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메이웨더는 2013년 카넬로전에서 커리어 최고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여준 것이 무색하게 작년 마이다나 1, 2차전에서 상당히 고전했고, 그의 하체가 예전같지 않다는 의구심을 불러 일으켰다. 파퀴아오가 몇 년 전부터 눈에 띄게 하락세를 보였다는 점 때문에 잘 부각되지 않지만, 메이웨더는 파퀴아오보다도 2살이 많은 나이다. 마찬가지로 언제 신체능력이 떨어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선수의 노쇠화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두 선수 모두 전성기와는 이제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노쇠화가 어느 쪽에 더 이점이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5. 판정은 과연 어느 쪽에 유리할까?


경기가 12라운드를 지나서 판정으로 가면 파퀴아오가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갖게 된 이유로는 메이웨더 vs. 카스티요 1차전의 논란의 판정승과 파퀴아오 vs. 브래들리 1차전에서 발생한 역대 최악으로 손꼽히는 판정이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메이웨더와 파퀴아오 둘 다 판정에서 이득과 손해를 본 경험이 모두 있다. 파퀴아오는 마르케스 1, 2, 3차전에서 2승 1무를 거뒀지만 모두 판정 논란을 겪었다. 메이웨더는 오스카 델 라 호야를 상대로 확실한 승리를 거뒀지만 판정단 중 한 명은 델 라 호야의 승리를 채점했고, 2013년 카넬로 알바레스전에서는 몇몇 언론에서 120-108을 채점할 정도로 압도적인 경기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논란의 부심 CJ 로스는 무승부를 채점했다. 


(파퀴아오 vs. 마르케스 1차전은 공식적으로는 무승부지만, 경기를 무승부로 채점한 판정단 중 한 사람이 마르케스가 세 번 다운당한 1라운드를 10-6이 아닌 10-7로 채점한 것은 자신의 실수였다고 이후 양심선언. 만약 10-6으로 채점했다면 경기는 파퀴아오의 판정승.)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복싱을 보면서 논란의 판정이 생기는 경우는 대체로 이랬다. 1. 워낙 근소한 접전이라 누구의 승리인지 의견이 분분하게 갈리거나 / 2. 실제 정타는 그렇게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많은 펀치를 휘둘러서 판정단을 혼동하게 만들거나 / 3. 전진하는 선수가 아웃복서인 상대에 비해 크게 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그레시브함에 지나치게 높은 점수를 주거나 / 4. 경기 막판에 지나치게 쉬어가다가 후반 라운드를 모두 빼앗겨서 억울하게 판정패하거나.


파퀴아오 vs. 마르케스 1~3차전이 1번의 대표적인 사례이고, 퍼넬 위태커가 3번의 경우에서 여러 번 피해를 본 경험이 있으며, 파퀴아오와 델 라 호야는 각각 브래들리와 트리니다드를 상대하면서 4번의 경우에 해당하는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두 선수 모두 라스베가스에서 판정의 이득과 불이익을 본 적이 있으며, 경기가 미국에서 치러진다는 이유로 메이웨더에게 유리한 판정이 내려지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양 선수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경기 후반을 헛되이 보내서는 점이다. 하긴 생각해보니 명색이 메이웨더 vs. 파퀴아오인데 누가 후반에 널널하게 놀 정도로 경기가 흘러갈 것 같지는 않지만…






6. 총평


나 또한 대다수의 예상과 마찬가지로 파퀴아오가 메이웨더를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선수는 이미 여러 번 약점을 공략당하고 KO패까지 당한 적이 있는 반면, 다른 한 쪽은 어려움을 겪은 적이 몇 번 있지만 아직까지 완벽하게 파해당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 차이는 상당히 크고, 메이웨더의 우세를 점치는 쪽이 대다수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초반 라운드에서는 상당히 치열한 공방전을 볼 수도 있겠지만 중후반 라운드는 메이웨더가 대부분 가져갈 것으로 예상되며, 파퀴아오가 막판 1~2라운드에서 분전할 수도 있겠지만 경기를 뒤집을 수준까지 갈 것 같지는 않다. 최종 스코어는 메이웨더가 2~3라운드 정도의 우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메이웨더 vs. 파퀴아오를 앞두고 많은 복싱계의 스타들과 레전드들이 경기의 양상과 결과를 예측했는데, 그 중에서는 버나드 홉킨스와 안드레 워드의 분석이 눈에 들어왔다.


버나드 홉킨스, 2월 26일 인터뷰 - "첫 5~6라운드는 파퀴아오의 공격적인 성향 때문에 엎치락뒤치락하는 경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파퀴아오는 수비적인 면에서는 최고라고 하기 어렵다. 메이웨더는 날카로운 공격을 적중시키고, 필요할 때마다 반격하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6라운드가 지나면 경기는 사실상 끝이라고 본다."


버나드 홉킨스, 3월 24일 인터뷰 - "파퀴아오의 스타일을 고려해 볼 때 그는 플로이드를 압도하려 들 것이다. 하지만 만약 플로이드가 초반의 러쉬만 견뎌낸다면 이길 수 있을 것이다. 플로이드는 적응(adjustment)을 하고, 상대가 대응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린 아이에게서 사탕을 뺏는 것처럼 쉬울 것이다. 파퀴아오가 들어갔다 나오는 거리에 적응만 한다면 말이지. 파퀴아오는 코토나 마이다나가 아니다. 플로이드는 이전에 그가 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해야만 한다. 특히 펀치에 관해서는 말이다. 이건 해튼을 상대하는 것과는 다르다. 파퀴아오는 경기 내내 상대방을 어렵게 만든다. 고로 열쇠는 플로이드의 잽과 카운터펀치다. 난 플로이드가 충분히 대처(adjustment)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간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플로이드가 이길 가능성과 질 가능성 모두 비슷하다. 나는 플로이드가 논란의 여지가 있는 판정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안드레 워드, 4월 24일 인터뷰 - "굉장한 경기가 될 것이다. 매니는 다양한 앵글에서 많은 펀치를 날리는 선수다. 그렇지만 플로이드는 마스터(Master)다. 여태까지 아무도 실력으로 이를 반박하지 못했다. 그는 높은 수준의 큰 무대에서 싸워 왔고, 언제나 적응(adjustment)했다. 가끔 몇몇 선수들은 몇 라운드 정도를 따내기도 했지만 플로이드는 경기가 12라운드까지 있다는 점을 잊지 않고 인내심을 가진다. 일단 그가 거리만 잡으면 경기를 장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리드 라이트 핸드, 리드 레프트 훅…자기 마음대로 펀치를 꽂아 넣겠지. 하지만 매니는 이 시합을 간절히 열망했고 그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바로 그 점이 이 경기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홉킨스와 워드는 둘 모두 지능적인 선수로 유명하고 HBO 해설로도 활동한 경험이 있으며 제법 눈여겨볼 만한 경기 전 분석이나 예측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둘의 분석에 가장 공감이 갔는데, 과연 실제 경기 양상은 어떻게 될지 기대된다.


2009년의 협상이 무산된 후 6년 동안 두 선수는 수많은 경기에 임했지만 그 모든 경기는 메이웨더 vs. 카넬로 정도를 제외하면 메이웨더 vs. 파퀴아오라는 큰 틀 속에서 치러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두 선수와 양 측 캠프는 2009년 협상 테이블에 앉은 이후 6년 동안 서로를 주시하며 언젠가 성사될 메가파이트의 그림을 구상하고 있었다. 저 위대한 두 선수들이 링 위에서 선보일 그림이 이 보잘것없는 예측을 훨씬 뛰어넘는 장관이 되기를 희망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