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d... to the paint, Sprewell! He's got a look! Drives in front, SHOOTS! NO! The San Antonio Spurs have won their first NBA championship." - Bob Costas (1999/06/25, NBC 중계 도중 스퍼스가 우승을 확정 짓자) 딘 말렌코의 프로 레슬링 도장이 문을 닫는 소식을 들은 다니엘슨은 돈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보단 본인의 계획이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멘붕 상태가 된 것이었다. 널리고 널린 것이 프로 레슬링 도장이었지만, 무작정 다른 체육관을 선택하기엔 하나같이 모두 미덥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였다. 다행히 딘 말렌코의 도장이 문을 닫은 지 얼마 안 되어 숀 마이클..
When you’re a kid, people constantly ask you what you want to be when you grow up. I don’t recall if it was immediately at first sight that I knew I wanted to be a professional wrestler, but looking back, I don’t remember ever wanting to be anything else. - Bryan Danielson (2015/07, Yes!: My Improbable Journey to the Main Event of WrestleMania) 다니엘슨은 여러 인터뷰와의 매체를 통해서 프로 레슬러가 아닌 다른 장래희망은 가져본적이 없었..
"As you write about your life there's a lot of things that you think about that you regret. It's interesting, because one of the things I regret the most is spending so much time focused on wrestling as opposed to focusing on my family." - Bryan Danielson (15/07/30, Interview) 다니엘슨이 프로 레슬링을 좋아하던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된 것은 중학교 때였다. 이번에는 단순히 프로 레슬링을 시청하는 선에서 즐기는 것이 아닌, 프로 레슬링을 직접 따라 하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학교 친..
"Some dragons are real. . . #ThankYouDanielBryan" - Cody Rhodes (16/02/08, Twitter) 1981년 5월 22일, 총 인구가 17,000명이 안되는 작은 도시이자 무엇보다 故 커트 코베인이 태어난 도시로 유명한 Aberdeen 에서 브라이언 로이드 다니엘슨이 태어났다. 태어날 당시 체중이 10파운드 이상이었을 정도로 우량아였던 다니엘슨은 자기보다 더 뚱뚱했던 아기는 보질 못했다고 회상하곤 했다. 브라이언 다니엘슨의 어머니에 의하면 다니엘슨은 어렸을 때부터 매우 조용한 성격을 가진 아이였으며, 또래 아이들과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탓에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반대로 다니엘슨의 아버지는 아들을 사람들과 매우 어울리기 쉬운 성격을 가졌으면..
무하마드 알리의 씁쓸한 말년과 대니얼 브라이언의 은퇴를 바라보며 무하마드 알리를 가까이서 지켜본 수많은 인물들은 알리가 거의 자기학대나 다름없는 가혹한 스파링을 소화했다고 입모아 증언하고 있다. 노먼 메일러는 저서 에서 알리가 포먼의 강펀치에 대비하기 위해 자이레의 훈련 캠프에서 실전 이상으로 가혹한 스파링을 소화했다고 기술했으며, 알리의 평전을 쓴 이쉬마엘 리드는 알리가 스파링 파트너들에게 단순한 스파링이 아니라 전력을 다해 싸울 것을 요구했고, 심지어 이들의 펀치를 의도적으로 얻어맞는 습관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알리의 이런 습관은 선수 생활 초기부터 이어진 것이었다. 알리가 아직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20대 초반, 플로이드 패터슨의 트레이너로서 알리를 상대했던 커스 다마토는 알리가 스파..
오스카 델 라 호야: 어머니의 약속, 그리고 올림픽 금메달까지 - Part 1 지난 2월 4일은 오스카 델 라 호야의 43번째 생일이었는데, 역시 그의 삶에서 가장 큰 영향을 남긴 경력인 올림픽 금메달과 그 배경에 대해 한번쯤 다루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자서전 과 다수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올림픽 금메달까지 이어지는 여정을 정리했습니다. "우리 어머니와 나는 언제나 한 팀이었어. 어머니는 복싱에 대한 애정을 키워나갔고, 내 경기에 빠짐없이 함께 자리하면서 당신의 아들이 다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맞서 싸우셨지.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에서 '커서 무엇을 할까?'라는 주제로 글짓기를 하는 숙제가 있었어. 숙제를 발표하는 날, 다른 아이들은 전부 경찰, 의사, 소방관 같은 직업을 말했지. 내 차례가 되자 ..
알 헤이먼의 PBC (Premier Boxing Champions)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1월 미국의 지상파 채널인 NBC의 타임 슬롯을 사들이면서 계약을 체결하기 무섭게 네트워크를 확장해나갔고, 그러다 보니 어느덧 알 헤이먼이 계약을 체결한 지상파 채널만 해도 벌써 3 곳이나 되었습니다. (NBC, FOX, CBS) 복싱계에서 보기 힘들었던 투자였던 만큼 지상파 채널뿐만이 아닌 여러 케이블 채널에서도 PBC 대회가 중계되기 시작했고, 지난 3월부터 12월까지 열렸던 PBC의 평균 대회 숫자는 무려 4.8개였습니다. TV 시청자들은 거의 위클리 쇼 급으로 PBC 복싱 대회를 시청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알 헤이먼의 공격적인 투자에는 복싱 관계자들이나 팬들 사이에서 의문이 증..
메이웨더와 마르케스가 말하는 정규 교육과 안정된 직업의 중요성. 메이웨더가 비교적 최근에 했던 인터뷰를 읽고 몇 년 전 마르케스가 한 인터뷰가 떠올라서 두 글을 같이 엮어서 소개함. Q:플로이드, 수많은 어린 선수들이 너의 커리어를 성공의 청사진으로 여기고 있는데, 그들에게 복싱이라는 힘든 스포츠의 굴곡에 적응하기 위한 조언을 해준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A:요새는 아주 젊은 선수들이 정말 많지. 죽어라 싸우는 젊은 친구들 말야.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 우리 체육관에서 운동 좀 제대로 하던 젊은 친구 하나를 본 적이 있어. 전국에서 손꼽히는 아마추어 선수라고 하는 것 같던데, 아무튼 내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했지. 요즘은 16~17세에 프로로 전향하길 원하는 어린 친구들이 많은데, 내가 그 친구들에게 해..
매니 파퀴아오의 은퇴전 상대는 누구일까 - 크로포드 / 브래들리 / 아니면 다른 누군가? 매니 파퀴아오는 2016년 4월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복싱계에서 은퇴한 후 정치인 활동에 전념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경기 일자와 장소는 2016년 4월 9일 라스베가스 MGM 그랜드로 확정된 상태이며, 파퀴아오의 마지막 경기 상대만이 선택을 기다리는 중이다. 경기 일자가 약 4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공식 발표도 곧 나올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까지 거론된 후보군 중 유력한 이름들의 정보를 간략히 정리해서 소개. 테렌스 크로포드 - 28세의 젊은 나이로 135파운드/140파운드 2체급 제패에 성공한 크로포드는 HBO가 차세대 스타로 가장 강력하게 밀어주는 선수 중 하나. - HBO에서는 크로포드의 지난 경기를 중계하면서..
골로프킨이 스파링에서 코발레프를 때려눕혔다는 일화의 진실은? 이전에 쓴 글의 보충 겸 연장선상에서 덧붙이는 글. 게나디 골로프킨이 두 체급 위의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세르게이 코발레프를 스파링에서 때려눕혔다는 일화는 대단히 유명하다. 골로프킨의 트레이너 아벨 산체스가 퍼뜨린 이 일화는 국내에도 적지 않게 퍼지면서 골로프킨의 강함을 추앙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아벨 산체스 - "코발레프는 골로프킨의 스파링 파트너 중 하나였다. 코발레프는 1년 반 동안 우리 체육관에 있었는데 그는 골로프킨을 상대하는 것을 진심으로 두려워했다. 코발레프는 골로프킨과 그렇게 많은 스파링을 하지 않았는데, 코발레프가 골로프킨의 실력에 대해 엄청난 경외심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골로프킨은 스파링에서 코발레프를 다운시킨 적도 있..
플로이드 메이웨더 vs. 매니 파퀴아오: 선수 분석 & 경기 예측 1. 메이웨더는 파퀴아오를 어떻게 공략할 수 있을까? - 파퀴아오를 고전하게 만든 선수들 파퀴아오 vs. 마르케스 3차전이 치러질 당시, 파퀴아오는 이미 웰터 라인에서 수 년 동안 활동한 반면 마르케스는 메이웨더와 치른 144파운드 계약체중 경기를 제외하면 근 5년 동안 수퍼페더급과 라이트급에서만 활동했고, 주니어웰터급에서 막 한 경기를 치를 무렵이었다. 이 때문에 대다수의 팬과 언론들은 1, 2차전의 접전에도 불구하고 3차전에서 파퀴아오의 압도적인 우세를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경기 내용은 1, 2차전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접전이었고, 결과는 파퀴아오의 매저리티 판정승이었지만 오히려 마르케스가 승리했다고 보는 여론도 적지 않을 정도였다. ..
글을 시작하기 전에 질문 하나. A와 B라는 두 복서가 있다고 가정하자. - B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체급 월장 행진으로 인해 놀라움과 함께 저것이 과연 약물의 도움 없이 가능하냐는 의심을 받고 있었다. - 두 선수의 경기가 성사되기 직전, A측은 경기 당일까지 혈액과 소변 샘플을 채취할 수 있는 USADA 주관 불시 약물 검사를 제안했다. - B측은 처음에는 약물 의혹을 부인하며 얼마든지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 며칠 후 B측은 선수 B가 주사 바늘을 무서워하고, 경기를 얼마 안 남긴 상태에서 피를 뽑는 주사를 맞으면 경기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미신 때문에 검사를 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이 요구를 거부하며 오직 경기 전 30일까지만 피를 뽑을 수 있는 검사만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
파퀴아오와 약물 검사 문제 ① : 2009년의 협상 과정, 그리고 약물 의혹위의 글에 이어서. 다시 말하지만 파퀴아오가 금지약물 사용자라고 단정지을 생각은 없다. 파퀴아오는 평소에도 징크스나 미신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처럼 멘탈적인 면에서 극도로 예민한 선수들이 미신이나 징크스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사례는 여러 스포츠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파퀴아오는 2005년에 한 인터뷰에서 이미 혈액 검사가 자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밝힌 적이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경기 직전 피를 뽑는 것을 꺼린다는 주장이 약물 검사를 피하기 위한 거짓말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영상: 파퀴아오가 2005년 인터뷰에서 모랄레스 1차전 당시 경기 전 혈액 검사..
버트 왓슨을 기리는 글 - 버트에게 보내는 동료들의 작별인사 / 버트 왓슨은 어떤 사람인가? After 14 AMAZING YEARS I've decided to step aside thank U Dana White Lorenzo Fertitta & Donna Marcolini pic.twitter.com/8eL04mVGaW— Burt Watson (@BurtWatson4real) 2015년 3월 3일 "지난 14년간의 멋진 나날들을 뒤로 하고 저는 물러나기로 결정했습니다. 데이나 화이트, 로렌조 퍼티타, 도나 마르콜리니 모두 고마워요!" 얼마 전 버트 왓슨이 UFC와 결별했다는 소식을 전해드렸는데, 결국 오늘 왓슨이 본인의 트위터를 통해 위와 같은 메세지를 남기면서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관련글 - ..
노니토 도나이레 인터뷰: 은퇴 여부 / 메이웨더 vs. 파퀴아오 승자는? / 도나이레가 좋아하는 만화는? 外 노니토 도나이레 주니어가 3월 28일 치러질 고국 필리핀에서의 경기를 앞두고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 도나이레는 지난 니콜라스 월터스전의 충격적인 KO패로 인해 은퇴가 유력하게 거론되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다가오는 재기전에 임하는 각오가 상당히 비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도나이레는 이번 윌리암 프라도전이 현재 자신의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는 분수령이 될 것이며, 설령 이기더라도 만족할 만한 경기 내용을 선보이지 못하면 경력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해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 지난 경기의 KO패는 그렇지 않아도 흐름이 좋지 않았던 도나이레의 의욕을 크게 꺾을 만한 충격적인 결과였지만 도나이레는 패배..
매니 파퀴아오가 후안 마누엘 마르케스 4차전에서 KO패를 당한 후 플로이드 메이웨더와 치러야 할 '메가파이트'의 불씨는 거의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다급해진 파퀴아오와 탑랭크 측에서는 리오스전과 브래들리 2차전 등의 경기가 끝날 때마다 메이웨더를 콜했지만 답변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마르케스를 상대로 설욕전을 하고 와라.' 메이웨더의 입장에서는 브래들리 1차전의 편파판정패, 마르케스 4차전의 KO패로 인해 크게 가치가 떨어진 파퀴아오를 상대하는 것이 내키지 않는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르케스는 4차전을 끝으로 다시는 파퀴아오를 상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밝혔고, 지쳐버린 팬들은 이제 메가파이트의 희망을 거의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작년 중순경, 메이웨더 캠프에 심상찮은 변화가 두 가지 일어..
안젤로 던디 3주기 Part 2 - 슈거 레이 레너드가 회상하는 안젤로 던디 복싱 역사상 최고의 트레이너 중 한 명인 안젤로 던디는 3년 전, 2월 1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전 글에서는 던디와 무하마드 알리의 첫 만남을 다룬 글을 소개해드렸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던디와 함께 한 또 한 명의 위대한 선수 '슈거' 레이 레너드가 던디의 별세 이후 그를 추억한 인터뷰를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안젤로를 만난 것은 언제였나요? "몇 달 전, 그의 90세 생일날이었어. 우리는 삶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이미 세상을 떠났던 그의 아내 헬렌 이야기가 나왔지. 안젤로는 헬렌을 떠나보낸 후 매우 힘들어했어. 경기에 관한 이야기도 했고 특별한 순간들도 회고했지. 그와 함께 어울리는건 아..
무하마드 알리와 안젤로 던디의 첫 만남 2012년 2월 1일, 위대한 트레이너 안젤로 던디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던디는 슈거 레이 레너드, 조지 포먼, 호세 나폴레스 등 수많은 위대한 선수들과 함께 했지만 역시 그와 함께 한 가장 위대한 선수는 무하마드 알리일 겁니다. 비록 던디는 알리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여러 세계 챔피언을 키워낸 유명 트레이너였지만 그렇다 해도 알리를 빼놓고 던디라는 인물을 설명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인데요. 이번 글에서는 던디와 알리가 만난 1957년의 일화를 각종 인터뷰와 서적 자료 등을 통해 정리해봤습니다. 안젤로 던디 인터뷰 中 아주 재밌는 경험이었지. 켄터키 주 루이빌에는 내 선수들이 많이 있어서 자주 방문했는데, 그 동네에 윌리 파스트라노(당시 WBC&WBA 라이트헤비급 챔..
2년 전에 제가 이글루스에서 프로 레슬링 블로그를 운영하던 시절에 작성했던 글을 다시 재조명해보았습니다. 프로 레슬링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었음에도 이 글을 작성했던건, 당시 저는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를 구독중이었고, 동시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데이브 멜처의 별점 시스템을 매 PPV마다 소개하고 있었던 터라 생각 없이 읽는데 흥미로운 주제길래 그날도 생각없이 읽다가 내용이 흥미로워서 한번 적어봤었네요. (...) 솔직히 이 글은 테마가 테마인만큼 플래쉬백으로도 사실 재조명할 계획이 없었던 글이었습니다; 또 제가 GOT MMA에서도 한번 소개를 해드렸던 글이기도 했고요. 플래쉬백 글 시리즈는 1달에 두 번씩 연재하는 걸 계획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상황이 특별한만큼 지난 글에 이어서 바로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