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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h Blah

레슬매니아 33을 감상하고.

Combat Critics 2017. 4. 14. 12:35



0  프로 레슬링과 나는 한때 미친 듯이 사랑해서 결혼까지 했지만, 결국엔 이혼한 사이와도 같다. 자녀의 학예회 때나 운동회 때 할 수 없이 전 부인과 한번 만나는 것처럼, 레슬매니아만 시청하는 그런 관계가 되어버린 듯.


그러고 보니 난 지난 로럼도 안봤....


레슬링에 미쳐 못 살던 때에도 레슬매니아는 좋아했다. 솔까 레슬매니아를 싫어할 수 있는 레슬링 팬이 있을까. 한 해 유일하게 프로 레슬링을 축제처럼 즐길 수 있는 그런 대회여서 좋았다. 아마 라이트 팬이면 라이트 팬일수록 레슬매니아를 더 쉽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매니아들이 있는 그대로를 즐기기가 힘들 테니 더 재미없게 감상할 듯.


여담이지만, 킹 모에 의하면 로비 라울러가 이날 아들내미와 함께 레슬매니아를 직관하고 있었는데, 로비 라울러가 엄청난 존 시나의 팬이라 시나 얘기만 해대는 덕에 ATT를 나간 점에 대해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무려 존 시나의 티셔츠와 오렌지색 NEVER GIVE UP 타월을 바지 뒷주머니에다가 넣고 감상을 했다고.


킹 모는 자기가 본 가장 열성적인 존 시나의 팬이 로비 라울러라고 하는데 (여담이지만 킹모한테는 다음 경기에서 KO로 이기면 유캔't시미 제스쳐를 해주겠다고 공약까지 했다더라), 이렇게 1년에 한 번씩 맘 놓고 프로 레슬링을 즐길 수 있는 이벤트가 바로 레슬매니아 아니겠는가. >_<


그래서 라이브로 봤다. 쇼가 너무 길다 보니 몇 번 졸아서 보다가 잠들뻔했던 위기가 있었지만, 다행히 잘 위기를 극복해내고 결국 언옹이 퇴장하는 것까지 라이브로 다 볼 수 있었다.



1. 레슬매니아 30에서 가장 큰 화두는 언더테이커의 연승이 깨진 순간이었다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록이 깨졌다는 것이 매우 아쉬웠지만, 딱히 놀라진 않았다. 하필이면 쇼 시작 5분 전에 계속 탑독을 유지하고 있던 언더테이커의 경기의 배당률에서 큰 변화가 있었고, 브록 레스너의 배당률이 -2500까지 떨어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내 기억으로 지난 몇 년간 레슬매니아에서 배당률이 틀렸던 경우는 극히 드물었는데, 하물며 배당률 차가 저렇게 벌어지는 경우는 결과가 확실하지 않은 이상 잘 나오지 않는 수치이다.


이미 스포일러를 접한 상태로 경기를 시청한거나 다름 없었기에, 나는 언더테이커의 컨디션을 중점으로 경기를 시청했다. 레슬매니아를 보면서 언젠간 자각할 일이었지만, 언더테이커의 몸 상태는 내가 생각했던 것 그 이상으로 좋지 않아 보였다. 경기가 끝나고 난 뒤, 언더테이커는 경기 도중 뇌진탕을 입었다는 보도가 나왔고, 빈스 맥마흔은 언더테이커의 몸 상태를 우려한 나머지 메인 이벤트도 시청하지 않은채 언더테이커를 따라 병원에 갔다는 후속 보도도 있었다.


흔히 프로 레슬링 팬들이 쉽게 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퍼포머의 나이와 몸 상태라고 생각한다. 선수의 나이와 몸 상태 같은 현실적인 문제는 고려하지 않고, 그 선수가 그동안 만들어냈던 경기 퀄리티와 그 선수가 커리어 동안 쌓아 올린 업적만으로 기량이 유지될 거로 생각할 때가 많은 것 같다.


씁쓸한 일이지만, 프로 레슬러들은 밥 먹듯이 당하는 뇌진탕과 살인적인 스케쥴을 소화하는 일상 속에서 살고 있다 보니 프로 레슬러마저 이러한 사실을 종종 망각한다. 생각해보면, 프로 레슬링은 사전에 정해진 각본에 따라 운영된다는 이유만으로 대단히 위험하고 가혹한 종목이라는 사실을 쉽게 외면받는다. UFC에서 활동하면서 TUF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우승하고,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하기도 했던 라샤드 에반스는 프로 레슬러 전향에 관한 질문을 받자 그 망할 프로 레슬링은 MMA보다 더 힘들다며 부정한 바 있었다.


나 역시 레슬매니아 30에서 언더테이커의 컨디션을 보고 충격에 빠졌지만, 사실 1965년생이었던 언더테이커에게 그 덩치에 그가 보여주던 기량을 계속해서 유지해주길 바라는 것 자체가 멍청한 생각이었다. 레슬매니아 25부터 레슬매니아만 되면 명경기를 뽑아주던 언더테이커의 말도 안되는 초인적인 모습에 잊고 있었던 모양이다. 비록 1년에 한 번 레슬매니아에서만 경기를 가지는 상태였어도, 언더테이커는 2014년에 만으로 49세가 되는 해였다.


해설자들이 일어나 모두 기립박수를 보내고, 팬들이 Thank you, Taker 챈트를 외치던 그 순간을 보며 나는 내심 언더테이커가 그대로 은퇴했으면 했다. 비록 내가 꿈꾸었던 언더테이커의 이상적인 은퇴 장면은 아니었지만, 서양권에서 흔히 쓰는 표현처럼 이미 더 이상 증명할 것이 남지 않은 언더테이커에게 이 이상 현역 생활을 이어갈 이유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언더테이커는 레슬매니아 31에서 부활했다. 많은 팬의 우려를 뒤로한 채, 언더테이커는 정말 그의 별명인 데드맨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경기를 시청하면서 뭔가 레슬매니아 20에서 장의사 기믹으로 컴백했던 그 경기가 떠올랐다. 언더테이커 본인의 쇼케이스 냄새가 짙었던 경기였기 때문이다.


살인적인 스케쥴과 전성기 시절 몸을 너무 혹사한 탓에 다시 부활하지 못한 채 링 위에서 사고로 사망한 故 미사와 미츠하루나 커리어 말기엔 보는 것 자체가 안쓰러웠던 코바시 켄타같은 선수들을 떠올리면서, 나는 언더테이커가 멋지게 부활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론 일개 팬으로선 거저 주제 넘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근데 왜 굳이 현역 생활을 이어가야 하는 걸까. 라는.


그다음 해 레슬매니아 32에서 쉐인 맥마흔과의 헬 인 어 셀 경기를 보면서 눈에 띄었던 점은 바로 언더테이커가 올드 스쿨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봐도 언더테이커가 올드 스쿨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은 너무 오래된 것 같아서 언더테이커가 레슬매니아에서 가진 모든 경기를 돌려봤는데, 이는 레슬매니아 14에서 케인과 붙은 이후 처음이었다. 언더테이커가 레슬매니아 빅매치마다 보여주던 노 터치 플란차는 기대하지 않은지 오래였지만, 올드 스쿨마저 쓰지 못할 정도의 몸 상태였다는 것은 안타까울 뿐이었다. 어렸을 땐 CZW 같은 자극적인 단체에서 나온 범프를 보며 인디 레슬링에 입문했던 나였지만, 머리가 커진 상태에서 본 쉐인 맥마흔의 범프도 그리 달갑지 않았다.






2. 레슬매니아를 앞두고 PWMania 에서는 4월 5일(수요일)에 언더테이커와 로만 레인즈가 올랜도에 위치한 퍼포먼스 센터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는 뉴스를 보도함과 동시에, 이미 이 시점에서 WWE의 프로듀서들은 언더테이커의 제한된 기동력을 우려하고 있었다고 하며, 최대한 언더테이커를 보호하고자 했다. 보아하니 로얄럼블과 레슬매니아를 위해 준비했던 엉덩이 수술은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으며, 나는 이 뉴스를 보고 경기가 강행되어도 정말 괜찮을까는 우려가 들었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던 위엄있는 언더테이커의 모습은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무뎌지더니, 이제는 분장으로도 가릴 수 없는 초최하고 늙은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살아오면서 언더테이커가 레슬매니아에서 가진 모든 경기를 보면서, 나는 이번만큼 언더테이커의 컨디션이 좋지 않게 보였을 때가 있었나 싶다. 지난 몇 년간 레슬매니아를 앞두고 언더테이커의 몸 상태와 관련된 루머는 매해 부정적으로 보도되었지만, 막상 언더테이커의 경기를 보면서 정말 이 사람이 몸 상태가 안 좋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실감이 나지 않았더라면, 올해만큼은 실감이 되었다. 그리고 경기를 다 시청하고 나니 로만 레인즈의 개인적인 기량은 둘째 치더라도, 언더테이커의 상대가 과연 존 시나였어도 경기를 이 이상으로 살릴 수 있었을까는 의문이 들었다.


말년의 자이언트 바바나 현재 타카야마 요시히로를 떠올려보면, 2m에 육박하는, 혹은 2m가 넘는 거구의 프로 레슬러에게 기량저하가 찾아올 시 단순한 기량 저하를 넘어서서 기동력에도 큰 문제가 오곤 했다.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사실상 언더테이커가 걸어 다니는 2m+ / 150kg 의 쌀포대가 되어버린 시점에서 시나가 언더테이커에게 쓸 수 있는 기술도 한정적이었을 것이고, 반대로 언더테이커가 시나에게 쓸 수 있는 기술도 한정적이었을 것이다.


시나와 붙었더라면 결국 경기는 서로 큰 기술을 주고받으면서 카운트 2.9 에서 일어나는 경기 전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것인데, 이날 언더테이커는 FU 2번만 맞아도 정상적으로 경기를 진행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경기 전 몸 상태를 고려해보면 시나의 STF로 제대로 셀링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경기 시간이 길어질수록 언더테이커의 기술 구사력 역시 정확도가 점점 떨어졌을 터. 말년의 릭 플레어와 코바시에겐 챱이 있었고, 미사와에겐 엘보우가 있었듯이, 차라리 언더테이커를 대표하는 기술 중 하나가 타격기였다면 보다 좀 더 수월하게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언더테이커의 상대가 시나였다면 경기의 모멘텀이 도중에 확 끊기는 일은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2번의 툼스톤 삑사리 이후 로만은 어색해진 상황을 슈퍼맨 펀치로 어설프게 모면하려고 했지만, 레슬매니아 25에서도 약간의 botch 는 있었지만, 두 베테랑은 센스있게 그것을 대처할 수 있었듯이 관록이 쌓인 시나였다면 좀 더 센스있게 대처하지 않았을까. 언더테이커 vs. 로만 레인즈는 흐름이 끊기지 않았어야 할 시점에서 맥없이 흐름이 끊겨버렸고, 결국 경기의 치명적인 옥에 티로 남게 되었다.


경기의 모든 책임을 로만 레인즈에게 독박을 씌우기엔 다소 가혹하다고 생각은 하나, 이미 서로가 합을 맞췄음에도 이런 botch를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은 실로 아쉬운 부분이었다. 더욱이 이 경기가 언더테이커의 마지막 경기라면 더욱 아쉬울 수밖에.






3. 코비 브라이언트와 데릭 지터의 은퇴는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은퇴이자 감동적인 은퇴였다. 이 둘의 은퇴는 지난 몇 년간 컴뱃 스포츠계를 주목하면서 명예롭게 퇴장하는 레전드들이 극히 드물었던 탓에 나에겐 더 와 닿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난 언더테이커만큼은 내가 납득을 할 수 있게 은퇴를 했으면 했다. 故 폴 베어러를 추모하던 명예의 전당 무대에서도 Kayfabe 를 깨지 않은 채 그답게 추모하던 언더테이커였던만큼 요란한 은퇴식까진 바라지 않았다.


언더테이커의 모습은 이날 레슬매니아에선 공교롭게도 WCW의 아이콘인 골드버그가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며 마지막을 장식한 모습이 대조되었다. 개인적으론 지난 2015년 11월 15일에 있었던 텐류 겐이치로의 은퇴 경기는 보는 것이 괴로웠는데, 그래도 그 경기에선 은퇴를 앞두고 있었던 1950년생 텐류 겐이치로의 비장함을 느낄 수 있었다면, 이번 언더테이커와 로만 레인즈의 경기에선 그런 것은 느낄 수 없었다.


빈스 맥마흔은 과거 스티브 오스틴의 팟캐스트에 나와 언더테이커만큼 이 업계에 베풀고자 하는 선수는 없다고 주장했지만, 개인적으론 본인 은퇴만큼은 좀 더 이기적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언더테이커만큼은 멋지게 은퇴할 자격이 충분했기에.



4. 아스날



5. 이 밑으론 그냥 가볍게 써보자면.


- 하디 형제들의 복귀는 매우 반가웠다. 2001년 말쯤에 내가 레슬매니아닷넷에서 처음으로 글을 남겼을 때 썼던 닉네임이 바로 하디보이즈의광팬이었다. 그만큼 제프 하디도 좋아했고 매트 하디도 좋아했다. 덤으로 리타도.


많은 하드코어 팬들은 매트 하디가 WWE 세계관 밖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던 BROKEN 기믹으로 활동해주길 바라고 있겠지만, 내가 봤을 땐 하디 형제들은 BROKEN 기믹과는 상관없이 WWE 세계관 안에선 그 존재만으로도 큰 인기몰이를 하기 충분한 선수들이다. 물론 이러면 제프의 인기가 매트를 다시 앞서나가겠지만. 개인적으로 제프 하디 같은 경우는 항상 언더독 느낌을 주면서도 동시에 많은 선수에겐 없는 특유의 카리스마를 지닌 선수라 전 세계 그 어떤 프로 레슬링 단체보다 WWE에 가장 잘 맞는 선수라고 느꼈다.


- 2010년만 해도 사실상 부활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린 상태로 WWE로부터 방출되었던 매트 하디가 수많은 관중에게 DELETE! 챈트와 함께 환영받는 것은 나에겐 상당히 신기한 광경이었다. 동시에 든 생각은, 프로 레슬링 업계는 역시 WWE를 견제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더라도, TNA 정도되는 단체는 계속 유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TNA에 대해선 항상 부정적이었던 CM 펑크가 (내 기억으론) 유일하게 TNA와 관련해 긍정적인 트윗을 리트윗했던 적이 있었다. 바로 TNA가 빨리 망했으면 하는 망무새들을 향한 일침이었는데, 내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대강 TNA가 망하면 프로 레슬러들은 WWE가 아닌 다른 무대에서 자신의 이름을 더 넓은 세상에 알릴 기회가 적어지며, 이는 프로 레슬링 업계에도 손해라는 내용이었다. CM 펑크는 이 트윗을 리트윗하면서 동조하는 반응을 보였다. 


- 매트 하디와 비슷하게 마지막엔 3mb 라는 우스꽝스러운 기믹으로 활동하다 방출되었던 드류 맥킨타이어는 꼭 TNA가 없었더라도 어느 정도 입지를 쌓은 후 하드코어 팬들의 환호와 함께 NXT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을 것이다. 맥킨타이어는 TNA가 아닌 다른 무대에서 부활할 수 있는 기량을 가지고 있었던 선수였고, 리서치를 해보니 WWN 측에서 운영하는 단체에서도 맹활약 중이었다. 하지만 이미 ROH에 다시 복귀했을 때 또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한 시점이었던 매트 하디는 다르다. 우선 브로큰 기믹 자체가 TNA가 없었더라면 탄생할 수 있었을지, 그리고 탄생했더라도 한 단체로부터 몰빵투자를 받을 수 있었을지는 회의적이다. 더군다나 매트 하디는 이미 ROH에 다시 복귀했을 때 또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한 시점이었다.


물론 TNA가 매트 하디라는 선수를 밀어주기 위한 순수한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냉정하게 봤을땐 긍정적인 화제거리가 하나라도 필요했던 TNA였던만큼 매트 하디에게 올인을 해주었지만, 시청률과 같은 지표를 보면 장기적으로 봤을때 브로큰 기믹이 TNA가 원한만큼의 이익을 안겨다 줬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매트 하디는 주목을 받을 수 있었고, 그 결과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자신 있게 제프 하디를 앞질렀던 해를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뭐 내가 더는 신경 쓸 문제는 아니지만, 데릭 베이트먼도 TNA가서 새로운 캐릭터를 부여받고 맹활약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TNA가 계속해서 살아남아 새로운 선수들이 더 큰 무대에서 노출되어 WWE에만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 되었으면 싶다. 과거와는 달리 이제 WWE에 입성하기 위해선 인디 쪽에서 어느 정도 활약해도 되는 세상이 되어버렸지만, 모든 단체가 WWE 진출을 위한 선수들의 디딤돌이 될 필요는 없으니.


- 보니 'Brother Nero' 로 활동한 제프 하디는 일반 인터뷰에선 기믹이 아닌 멀쩡한 일반인의 상태로 인터뷰에 임하던 반면, 매트 하디는 브로큰 기믹을 유지하면서 인터뷰를 하는 모습이 참 재밌었다. 심지어 제리코의 팟캐스트나 RF 비디오와의 슛 인터뷰도 브로큰 기믹으로 임했던데, 본인의 이런 피나는 노력(?)이 없었더라면 브로큰 기믹은 완성되지 못했을 터. 나는 오히려 옆에서 매트 하디가 브로큰 기믹으로 인터뷰를 해도 한번도 웃음을 터뜨리지 않은 제프 하디가 경이롭기까지 했다. 한번은 인터뷰어가 어떻게 참느냐에 대한 질문에 자기도 모르겠지만, 매우 힘들다며 그제야 살짝 폭소를 터뜨리던데.. 자기는 그냥 손을 놨다고 하던 ㄲㄲㄲ


그나저나 정말 아는 양덕의 말처럼, 누가 ROH에서 로스터의 그 어떤 선수보다 더 크게 환호받는 하디 형제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참 프로 레슬링이라는 게 보면 볼수록 신기함. 하기야 국내에서도 비난받던 나카무라나 타나하시가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 선수임을 생각하면, 프로 레슬링은 정말 모르는 장르이다.


- 아마 의도한거겠지만, 매트 하디가 DELETE 챈트를 유도할때마다 화면을 돌리거나 혹은 리플레이를 틀어주더라. 2010년대 들어서 WWE가 허용하는 세계관에는 신일본과 ROH 심지어 UFC도 존재하지만, 저 세 단체와는 달리 TNA에서의 활약상은 여전히 직접적으로 언급할 수 없는 지역인듯?


- 하디 형제 같은 경우는 보아하니 조건이 맞았더라면 TNA에 잔류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본인들도 TNA 활동에 큰 만족을 한 것 같았고, 오죽하면 둘 다 前 오너인 딕시 카터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만약 잔류했더라면 BROKEN 기믹의 유통기한이 얼마나 유지되었을지는 의문이다. 이미 온갖 판타지 요소를 도입한 데 그치지 않고 드론에도 캐릭터를 주고 장인어른과 본인의 친아들 심지어 캥거루하고 스파링까지 하는 상황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미지 소비가 너무 커서 금방 한계에 부딪히지 않았을지. TNA가 브로큰 기믹에 몰빵 투자를 하는 상황이었던 만큼 뭔가 기믹의 완급조절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이던.


- 개인적으론 작년과 비슷했던 그런 레슬매니아였던 것 같다. 대회 시간이 너무 길었다는 게 좀 흠이었던것 같기도. 어지간한 레덕들도 이번 레슬매니아의 러닝타임에 혀를 내두르던데 나는 오죽했을까.. HHH vs 세스부터는 누워서 보다가 졸아서 안 되겠다 싶어 컴퓨터 앞에서 다시 시청해야만 했다...


수많은 관중이 커트 앵글을 You suck! 으로 환영해주는 장면은 뭉클했다. WWE에서 다시 보니 반가웠음.


- 괜히 모르는데 아는척하는 것은 싫어서 글쓰기 전 조금 리서치를 하는 과정에서 본 브로큰 기믹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 어떤 누구도 작년에 매트 하디의 브로큰 기믹을 넘은 기믹은 없었다는 점에 대해 부정하지 않던데 ㅇㅈ ㅇㅇㅈ. 참 보면 볼수록 기믹이 다른 단체에서 만들어졌다고 해도 TNA에서만큼 지원을 받기는 힘들었을 듯. 하디 형제가 브로큰 기믹이 없었더라도 레슬매니아에서 깜짝 컴백했더라면 큰 환호를 받았겠지만, 브로큰 기믹이 있었기에 그 이상의 반응이 쏟아진 것 같다. 적어도 명예의 전당에서 앵글의 스피치 도중에 하디 형제의 이름이 언급되었을 때 DELETE 챈트가 아레나를 가득 메운 일은 없었을 듯.


이대로 사라지기엔 확실히 아까운 기믹이긴 해서 언젠가 WWE가 요긴하게 써먹었으면 싶지만, 매트 하디가 WWE에서 얼마만큼의 권한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근데 WWE에서 브로큰 기믹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완급조절이 가능하게 되어서 기믹이 보다 좀 더 롱런할 수 있을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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