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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Last Run: 버나드 홉킨스와 함께 한 하루


※ www.Insidehboboxing.com의 Kieran Mulvaney와 사진기자 Ed Mulholland가 현지 시각으로 다가오는 17일 밤에 예정된 버나드 홉킨스의 은퇴전을 앞두고 그와 함께 한 하루 일정에 대해 기고한 글을 번역해서 소개합니다.






로스 앤젤레스, 2016년 12월 13일


오전 6시 42분, LA 시내의 호텔 로비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자 메세지를 받았다. "좋은 아침. 버나드가 준비 중입니다. 대기해주세요."


다가오는 토요일, 1965년 1월 15일에 태어나서 1988년 10월 11일에 프로 복서로 데뷔했고, 이제 51세 11개월인 버나드 홉킨스가 LA의 더 포럼(The Forum)에서 조 스미스 주니어를 상대로 한 12라운드 경기에서 그의 65번째 프로 경기이자 그의 인상적인 프로 경력을 마무리하는 은퇴전을 치르게 된다. 그의 마지막 경기를 4일 앞두고, 홉킨스는 그가 지금까지 수없이 많이 해 왔고, 은퇴한 뒤에도 몇 년은 더 할 듯한 일로 하루를 시작하려 한다. 놀랄 만큼 쌀쌀하고 흐린 남부 캘리포니아의 아침이 되자 홉킨스는 러닝을 시작한다.


문자를 받은 지 30분 정도가 지난 후, 홉킨스는 그의 팀원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이어폰을 끼고 자신의 닉네임 'BHop'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채 나타났다. 홉킨스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대기 중인 검은 SUV 두 대를 타러 가는 중에 합류한 우리 두 명에 대해서도 한 눈에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차량 뒷자석의 가운데 자리에 올라타서 두 자리를 차지한 채 다리를 쭉 뻗었다.


"음악 뭐 좋아해?" 홉킨스가 물었다. "음악 좀 아는 것처럼 보이는데, 내가 러닝하면서 무슨 음악 들을 것 같아보여? 다들 내가 DMX 같은 종류를 들을 것 같다고 생각하던데, 근데 그런 건 '사형집행인(The executioner, 홉킨스가 마지막 경기에서 다시 한 번 선택한, 그의 오랜 링 네임이자 페르소나)' 컨셉으로 링에 입장하면서 트는 노래일 뿐이야. 너무 빡세거나 빠른 노래는 잘 안 들어."


홉킨스는 주도면밀한 눈길로 자신의 아이팟을 살펴봤고 - 홉킨스는 자기 주변의 모든 것을 끊임없이 가늠해보려 했다. 근처에 있는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특히나 그랬다 - 재생 버튼을 눌렀다. 아이팟에서 흘러나온 것은 놀랍게도 니나 시모네(Nina Simone)의 감미로운 목소리였다.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의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홉킨스는 <슈퍼플라이(Superfly)>를 부른 메이필드를 아주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홉킨스가 운동을 하면서 들었던 음악의 대부분이 메이필드의 곡이었다. 비합(BHop)과 하루를 함께 하는 동안 우리는 <Move on Up>을 끊임없이 들을 수 있었다.






오전 7시 45분,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 크롬웰 필드에서


홉킨스는 감량을 위해 러닝을 할 필요가 없었다. 홉킨스는 금요일까지 한계 체중인 175파운드를 맞춰야 했지만, 사실 그는 그 이상의 체중을 기록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홉킨스는 그저 자기 몸 상태를 최상급으로 유지하는 것을 좋아해서 러닝을 하는 것이었다. 홉킨스는 자기 몸 관리에 소홀한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홉킨스는 몸 관리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이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그가 성공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난 언제나 훈련하면서 내 몸 상태를 유지해 왔어. 젊은 친구들에게 이런 충고를 해 주고 싶어. 네 몸을 준비된 상태로 유지하면, 언제든 곧바로 경기에 나설 수 있는 몸을 만들 수 있어. 몸을 복서답게 만들기 위해 캠프의 절반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 하지만 요즘 너무 많은 친구들이 자기 몸을 너무 풀어지게 냅둬서 결국에는 자기 몸과 전쟁을 벌이게 만들지."


홉킨스의 말에 따르면 그는 "신선한 아침 공기를 폐에 채우기 위해" 아침 러닝을 한다. USC 트랙을 따라 몇 바퀴 달린 직후의 홉킨스는 한 눈에 봐도 기운이 넘쳐보였다. 어설프게 헤이즈먼(Heisman) 포즈를 취할 정도였다. 운동장을 나선 우리는 USC 명예의 전당 앞에 멈춰 섰다. '헤이즈먼 트로피'를 수상한 OJ 심슨, 마커스 앨런, 로니 랏 같은 위대한 선수들, 그리고 원조 플래쉬 고든(Flash Gordon)이자 올림픽 대표 수영 선수였던 버스터 크래브 같은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 경기를 앞둔 한 주였지만 홉킨스는 자신의 지난 경기 전 한 주들을 회상할 기분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홉킨스는 돌아가는 차 안에서 분위기를 살짝 풀었다.


"홉킨스 씨가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음. 펠릭스 트리니다드 전이 최고였지. 그 다음이 켈리 파블릭. 세 번째가 오스카 델 라 호야. 그 다음이 캐나다 퀘벡 시티에서 장 파스칼을 상대할 때. 두 번이나 다운을 당했고 무승부로 끝나버렸지. 그런 판정을 받은 적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에콰도르였죠? 세군도 메르카도를 상대했을 때."


"그걸 다 기억하네. 허, 맞아. 1994년 12월 에콰도르 끼또였지."


"그 경기가 그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막장이었나요?"


"상상도 못할 걸. 그때 내 프로모터는 버치 루이스였는데, 그 양반은 나에게 대진료를 한 푼도 못 준다고 해서 돈 킹 프로모션 쪽으로 넘어가게 됐지. 결국 경기 3일 전인 목요일이 될 때까지도 경기 장소에 가지 못하는 신세가 됐어. 헌데 그 대회에서는 마이클 넌도 경기를 했는데, 그 친구는 고지대에 적응하려고 일주일 전에 경기 장소에 도착했단 말야. 끼또에 대해 들은 게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끼또는 정말이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끔찍했어. 거기서 살아서 나온 것만 해도 다행이지."


"지금까지 상대한 선수 중 가장 까다로운 펀쳐는 누구였나요? 세르게이 코발레프?"


"로이 존스였어."


"정말이에요?"


"그래. 왜냐면 정말이지 엄청나게 빨랐거든. 조지 포먼처럼 묵직하게 휘두르는 펀치와는 또 달랐어. 만약 포먼 같은 선수가 날 치려고 하면 어디로 주먹이 날아오는지 파악할 수 있었을 텐데, 로이를 상대로는 그게 불가능했어. 로이의 펀치는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도저히 파악할 수가 없었거든."






오전 9시, 홉킨스의 호텔 스위트 룸에서


홉킨스의 스위트 룸은 전 세계 챔피언이자 장차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릴 선수에게 걸맞는 곳이었다. 거실은 여섯 개 이상의 자리가 있는 식사 공간, 바로 옆의 부엌과 이어져 있었다. 다른 공간에는 마사지 테이블이 들어서 있었고, 그 너머에는 침실이 있었다. 창문 너머로는 스테이플스 센터(Staples Center)가 보였다.


모두가 식탁에 앉자, 홉킨스는 우리를 쳐다보며 미소지었다.


"그래, 마지막 한 경기(The Final One)라!"


"감회에 젖거나 하지는 않으십니까? 가령 '이제 마지막으로 X나 Y를 할 때가 되었군'하는 식으로 말이죠."


"아니. 왜냐면 이제 나는 다가오는 토요일에 내 목을 따러 오는 젊은 황소같은 녀석을 상대해야 하잖아. 과거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아. 왜냐면 난 이제 가까운 미래에 닥쳐올 일에 집중해야 하니까. 내가 상대해야 할 선수는 조 스미스 주니어지, 오래 전에 상대했던 펠릭스 트리니다드나 오스카 델 라 호야 같은 선수들이 아니잖아. 모든 것이 끝나면 그때는 감회에 좀 젖어도 되겠지."


"이번 트레이닝 캠프에서는 평소와 뭔가 달라진 것이 있나요? 나이 때문에 어떨 수 없이 양보해야 하는 그런 것 말이죠."


"전략은 달라졌지. 직업 정신(work ethic)은 그대로야. 그렇지 않으면 할 일을 잘못 고른 거지. 복싱에서 그것만큼은 절대로 꾸며낼 수 없거든."


홉킨스는 식사로 닭고기, 계란 흰자, 베이글과 훈제 연어("난 반쯤은 유대인이거든." 홉킨스는 이렇게 농담했다), 그리고 쇠고기를 주문했다. 쇠고기는 좀 더 설명이 필요한데, 홉킨스는 쇠고기를 직접 골라서 호텔 레스토랑에 준 다음 요리해서 자신의 식사와 함께 갖다줄 것을 요구했다. 식사가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홉킨스는 사탕무 주스를 마시며 뿌리채소가 건강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장광설을 풀었다.


식사가 나왔다. 홉킨스는 식사와 함께 나온 아보카도를 먹지 않았다. "경기를 앞둔 시점인데, 이거에는 지방이 너무 많아." 홉킨스는 같이 나온 베이글은 손도 대지 않고 훈제 연어만 먹었다. 그리고 그는 커리어 내내 법정에 서는 것도 겁내지 않던 사나이에서 친근한 느낌의 어르신이자 중년 남성의 모범이 된 한 남자의 믿기지 않는 변화에 대해서도 반추했다.


"사람들이 나나 '사형집행인' 캐릭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HBO에 27세 선수와 51세 선수의 대결이라는 문구가 뜨면 50세 이상의 사람들이나 50세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다들 응원하게 될 거야. 내 나이에 포스터에 이름과 얼굴을 올릴 수 있다고 상상이나 해 봤어? 나 이전에는 조지 포먼이 그랬지. 포먼의 커리어 초창기에는 모두가 그를 꺼려했어. 이제 사람들은 내가 '사형집행인' 캐릭터를 연기할 때보다 날 더 좋아하게 됐잖아. 바로 그게 내가 해야만 했고, 마침내 해낸 일이지. 우리 모두에게는 동기부여가 필요하지만, 나이를 먹고 성숙해지면 달라지지. 나는 오랜 기간 동안 기자회견장에서 내 상대와 별의 별 난리를 피웠지만, 이제는 그게 지루해지면 진지하게 그 짓을 할 수가 없게 되지. 그래서 변하게 된 거야." 






오후 1시 45분. LA 시티 오브 앤젤스 체육관.


홉킨스는 이날 훈련의 대부분을 공개 미디어 세션에서 소화할 예정이었다. 토요일의 HBO 대회와 전날 방송하는 HBO 라티노 대회에 출전하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이 세션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홉킨스는 이 미디어 세션이 자신이 훈련하는 LA 와일드 카드 짐이 아니라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진행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홉킨스는 반드시 와일드 카드 짐에서 일정을 소화하겠다며 항의했지만, 결국 기자들을 만나는 것은 원래 정해진 장소에서 진행하고 훈련은 와일드 카드 짐에서 하는 것으로 합의하게 되었다.


이동 중에도 홉킨스는 이런 의무적인 일정이 에너지를 앗아가지 않았으면 한다고 불평했다.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홉킨스는 관심받길 좋아하는 사람이고 장광설을 풀어놓는 재능이 있었다. 영상 인터뷰어들과 질의응답을 하며 포즈를 취해 주고 신문 기자들을 상대한 이후, 홉킨스는 사진 촬영을 위해 체육관의 링으로 들어섰다.


링 위로 올라선 홉킨스는 기자들의 마이크와 카메라를 향해 돌아서서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자, 들어봐! 원래 시간 문제와 다른 준비 때문에 여기서는 훈련을 하지 않기로 했거든. 그런데 모니카(Monica Sears, 골든 보이 프로모션의 운영 부사장)가 부탁해서...아니, 부탁 정도가 아니라 제발 셔츠 벗고 운동 좀 해달라고 애원을 하지 뭐야!"


링 안으로 들어간 홉킨스는 상의를 벗고 그의 '사형집행인' 시절 트레이드마크였던 양 팔로 X자를 그리는 자세를 취했다. 그런 다음 홉킨스는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건물 안에 있던 모든 젊은 선수들을 불러모았다.


"젊은 친구들 다들 어디 갔어? 다들 이리 와. 이건 성화(聖火)를 넘겨주는 거라고."






선수들은 링 위로 올라가서 홉킨스의 곁에 섰다. 이 선수들의 대부분은 홉킨스가 프로에 데뷔할 무렵(1988년)에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 나이였다. 골든 보이 프로모션의 젊은 전사들과 포즈를 취한 후, 홉킨스는 갑자기 링을 나서더니 무언가 꿍꿍이를 갖고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홉킨스의 팀원 전체가 그를 따라나섰고, 우리도 이들을 따라 문을 나섰다.


"홉킨스 씨는 젊은 선수들의 멘토로서 조언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요. 혹시 트레이너 일을 할 생각은 있습니까?"


"내가 좋은 트레이너가 될 것 같아? 아니, 전혀. 난 선수들에게 확고한 기준치를 요구하거든. 그러면 선수들을 완전히 녹초로 만들 거야. 마이클 조던 봐봐. 그 양반이 좋은 코치가 될 것 같아? 절대로. 왜냐면 조던은 새벽 2시 반에 훈련할 시간이라며 선수들을 깨워서 연습을 시킬 사람이잖아. 그러면 선수들은 이렇게 항변하겠지. '뭐라고요? 아침 7시에 하면 안될까요?' 그러면 조던은 선수들과 입씨름만 벌이다가 결국 때려치울 거야. 운동화 팔아서 매년 5천만 달러를 버는 사람이 뭐가 아쉽겠어."


"오늘 미디어 세션은 어땠습니까?"


"뭐 그냥 괜찮았어. 항상 똑같은 질문이지. 왜 다들 늘상 '왜 이 선수를 상대하는 거죠? 당신의 업적은 이제 확고하잖아요. 굳이 싸울 필요가 없는데 왜 이런 경기를 하는 거죠?' 이런 질문들을 하는지 모르겠어. 경기를 이틀 남기고 대체 왜 이런 것들을 물어보는 거야?"


"음, 왜냐면 홉킨스 씨 같은 분은 솔직히 말해서 저 같은 사람과 은퇴전을 치르고 떠나도 무방하거든요. 대체로 다들 은퇴전은 편한 경기로 택하는 법이잖아요. 쉬운 선수를 상대로 몇 라운드 적당히 치르다 KO시키고 박수를 받으며 떠나는 거죠. 그러다보니 51세의 선수가 은퇴전 상대로 쉬운 선수 대신 한창 때의 젊은 펀처를 상대하는 게 그들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거죠."


"그래? 그게 다야? 마치 내가 벌써부터 모두의 머리 속을 복잡하게 해놓은 것 같군."


"게다가 요즘은 젊은 챔피언들도 최상의 상대를 굳이 만나려 하지 않는 풍조가 있잖아요?"


"자기 벨트를 포기해가면서 말이지."


"맞아요. 그런데 홉킨스 씨는 그 누구도 피한 적이 없죠."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지. 오스카(델 라 호야)도 마찬가지였어. 그 친구는 굳이 날 상대할 이유가 없었어. 그런데도 날 상대해서 나에게 최고의 대진료를 안겨줬지. 무려 1천만 달러였어. 그 당시에 기자 한 명이 오스카는 3천만 달러를 받는데 나는 '고작' 1천만 달러를 받는 것이 불쾌하지 않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지. '1천만 달러를 두고 '고작'이라니? 난 몇백 달러를 훔치다가 감옥에 갇혔던 놈인데 '고작' 1천만 달러라고?"


불가리아계 지압사 토니(아마 홉킨스의 팀에서 유일하게 홉킨스보다 나이 많은 인물인)가 시트 너머로 우리 쪽을 바라보며 끼어들었다.


"난 10만 달러만 줘도 너랑 싸우겠다!"


홉킨스가 곧바로 맞받아쳤다.


"그것보다 더 많이 받아야 할걸? 니 이빨만 치료해도 6만 달러는 들겠다. 너 빨대로 스테이크 빨아먹어 본 적 있냐? 여덟 달 동안 턱에 와이어 차고 있으면 살이 쭉 빠질 텐데? 그러다가 나중에 건강 음료 회사 대변인 해도 되겠는데."






오후 5시 24분, 헐리웃 와일드카드 복싱 짐


체육관에 들어서자 프레디 로치가 그의 명망 높은 체육관 계단을 따라 내려 오고 있었다. 로치는 얼마 전에 신축한 개인 체육관을 오픈했다. 


"내가 왜 여길 사들였는지 알겠나?" 로치가 새 체육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매니 파퀴아오를 위해 좀 더 조용한 공간을 마련한 것 아닌가요?"


"아니. 주차 공간 때문이야. 차를 댈 곳이 더 필요했거든."


로치는 단지 훈련 장소를 제공할 뿐, 그가 홉킨스의 훈련을 감독하는 것은 아니었다. 체육관 문을 열어준 후 로치는 다시 2층으로 올라가 모습을 감췄다. 홉킨스의 커리어 마지막 경기 준비를 감독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은 존 데이빗 잭슨이었다. 홉킨스의 바로 전 경기에서 그의 상대인 코발레프를 지도했고, 홉킨스에게 패배를 안겨 줬던 사람이다.


커티스 메이필드의 음악이 체육관에 울리는 동안, 홉킨스는 몸을 풀고, 섀도 복싱을 하고, 헤비 백을 치고, 잭슨과 함께 미트를 쳤다. 홉킨스의 몸은 군살 하나 없이 강건했다.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놀랄 만한 수준이었다. 확실히 홉킨스는 신체적으로 이전의 모습만큼이나 좋아보였다. 콤비네이션을 반복하는 홉킨스의 주먹은 지금까지 그의 주먹과 팔에 쌓여 왔던 고행에도 불구하고 전혀 느려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떠날 무렵에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홉킨스가 말했다. "내 훈련을 보면서 뭔가 묻고 싶었던 건 없었어?" 어느 정도는 친근함을이 묻어났지만 동시에 자신의 손님인 우리에게 충분한 관심을 줬다는 확신을 주기 위한 것이기도 한 모습이었다.


그가 연습한 콤비네이션의 본질, 그와 잭슨이 스미스를 상대로 요긴하게 써먹을 몇몇 펀치들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그 모든 비밀을 이 자리에서 공개하는 것은 다소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나이 차이와 스미스의 무시할 수 없는 펀칭 파워에도 불구하고, 홉킨스는 그의 은퇴전을 패배로 끝낼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별로 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설명은 충분한 것 같다. 홉킨스가 상대방을 우습게 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스미스의 경기를 계속해서 돌려보면서, 그가 어떻게 펀치를 내고 펀치에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 끊임없이 연구했고 마침내 스미스 자신보다도 스미스에 대해 잘 알게 됐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어떤 일을 진심으로 하게 된다면, 그 일을 통해 어떻게 기억되느냐가 중요해지잖아. 토요일의 경기가 나에게 있어서 바로 그런 거야. 마치 책의 마지막 장 같은 거지. 어떤 책을 읽는다면 그 책이 마음이 들건 안 들건 상관없이 머릿속에 남는 게 뭔지 알아? 마지막 장이야. 마지막 장이 별로라면 1장이나 2장이 어땠는지는 의미가 없잖아. 나에게 있어서 은퇴전은 바로 그런 거야. 내 경력이라는 책의 마지막 장이고, 가장 중요한 경기가 되는 거지."


"그렇지만 지금까지만 해도 꽤나 대단한 책이었죠."


"분명 그랬지."


"게다가 꽤나 길었죠."


"맞아. 정말 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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